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은 정말 비싼 걸까?
by 김상훈
최근 한국소비자원에서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한국과 통화량이 비슷한 주요15개국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그러자 SK텔레콤이 반박 보도자료를 냈고, 방통위도 조사 결과가 일부 부적절하다며 이동통신사 입장을 거들었습니다. 언론들은 과연 누가 맞는 것일까에 초점을 맞춰 진실 게임을 보도했지만, 결국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원자료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소비자원이 오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통신사들이 반복해 주장했듯, 통화요금을 나누는 '분모'를 '가입자수'로 계산하는 한국과 'SIM카드(가입자 식별 카드) 수'로 계산하는 외국을 동등 비교하는 건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원에서는 한국에서도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SIM카드는 휴대전화를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가격저항의 크기가 다르니 SIM카드를 사용하는 그리스같은 나라에선 국민들의 휴대전화 가입률이 '200%'에 이릅니다. 1인당 SIM카드를 2장 씩 갖고 있는 셈이니, '단순 비교'라고 통신사들이 불만을 나타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통신요금은 생각보다 싼 것일까요? 2007년과 2008년,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통신비 지출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OECD 발표는 이달 중에 나오니, 그 때 보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휴대전화 사용연령도 점점 내려가서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합니다. 부가서비스도 계속 늘어나 무선인터넷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고, '결합할인'이라고 통신사들은 주장하지만 이제 우리는 전화와 TV마저 통신사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동일한 기업집단이고, KT는 아예 KTF와 합병을 했습니다. LG텔레콤과 데이콤, 파워콤 등도 같은 기업집단입니다. 게다가 SK와 LG 그룹은 통신계열사들을 합병할 계획이 있어 보입니다. 결국 한 회사라는 것이죠.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많아질수록 통신사의 매출은 늘어납니다. 국내 거대 통신그룹들의 매출은 최근 한 번도 줄어본 적이 없고, 이들은 신사업으로 돈을 번 게 아니라 소비자가 지불하는 통신요금으로 매출을 늘려왔습니다. 그게 잘못이란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통신요금이 싸다고 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Hai-Xang Duong at Flickr
또 하나, '휴대전화 요금' 그 자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국과 한국의 통신요금을 비교할 때 비교의 대상은 '통신료'입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SIM카드 생각을 해보죠. 왜 한국 소비자들만 유독 SIM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까요? 해외와 똑같은 WCDMA 방식도 보급돼 한국에서도 충분히 SIM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통신사들은 SIM카드가 사용되면 MMS 수신이 어렵고,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활용을 꺼립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빠르게 휴대전화 단말기를 교체합니다. 조사 시점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18개월에 한 대 씩 휴대전화를 교체한다는 통계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한국 소비자는 이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 비용이 타국 소비자보다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휴대전화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전화는 기본적으로 값이 비싼 '프리미엄 지향' 휴대전화입니다. 저가 휴대전화가 한국처럼 빨리 단종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한국에선 한 번 컬러 디스플레이 휴대전화가 유행하면 흑백 제품은 단번에 자취를 감춥니다. 슬림한 휴대전화가 유행이면 두꺼운 제품이 한번에 사라집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외에선 투박하고 못 생겼으나 값은 싼 '통화만 잘 될 뿐'인 휴대전화들이 많이 팔립니다. 이렇게 비싼 휴대전화를 바꿔가며 통신사를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SIM카드로 통신사를 선택한다면? 내 값비싼 휴대전화를 유지한 채 얼마든지 통신사를 옮겨다닐 수 있습니다. 이동통신사 사이의 경쟁이 훨씬 심해지는 것이죠. SIM카드가 한국에서 사용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통신사들은 외국 통신사들과는 달리 '경쟁의 의무'를 회피합니다.
가계소득 가운데 통신비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경쟁을 회피하는 통신사들 덕분에 단말기를 바꾸지 않으면 통신사를 바꿀 수 없어서 18개월마다 휴대전화를 교체해대는 한국의 소비자들. 이동통신 요금을 유선통신과 휴대전화 단말기 구입비용 및 경쟁 저하로 인한 피해까지 포함해 '광의의 통신료'로 환산해 계산한다면,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은 정말 비싼 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