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H마트에서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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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와 한국음식에 대한 얘기인데,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우리 모두가 몇십분씩 얘기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얘기인데, 막상 펼쳐 들고나면 손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명동교자의 마늘 냄새가 잔뜩 나는 김치, 엄마와 함께 얇은 만두피에 꼭꼭 속을 넣어 끓여낸 만두국, 항암치료 중에도 한그릇을 다 비우게 만든 콩국수... 이런 이야기들이 엄마의 암 투병과 함께 이어집니다. 음식은 한없이 화려하고 다채로운데, 결론은 이미 예정된 엄마의 죽음. 그래서 입맛이 돌면서도 눈물이 나고, 우리 집도 저런데, 하다가도 우리 집도 저러면, 하며 걱정도 듭니다. 평범한 얘기인데 어쩐지 긴장을 멈출 수 없는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한국인처럼도, 미국인처럼도 생기지 않아 사춘기 때 어려움을 겪는 여성입니다. 밴드를 하고 싶어 하지만, 한국인 엄마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하죠. 게다가 엄마는 다른 미국 엄마들과 달리 딸이 다칠 때 안아주는 대신 혼을 내고, 딸은 피를 흘리면서도 "엄마 내가 잘못했어"를 외쳐야 합니다. 그래도 딸과 엄마는 원수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관계입니다. 그 교감은 음식을 통해 오고갑니다. 적당히, 잘, 아리송하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엄마는 누군가 찌개를 먹을 때 국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지, 매운 걸 잘 못 먹는지,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해산물을 안 먹는지, 먹는 양이 많은 편인지 어떤지를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제일 먼저 무슨 반찬 접시를 싹 비우는지를 기억해뒀다가 다음번엔 그 반찬을 접시가 넘치도록 담뿍 담아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갖가지 다른 음식과 함께 내어놓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딸은 엄마의 평범한 행동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아냅니다. 엄마가 좀 더 먹으라고 자신의 고깃국에서 고기를 건져서 딸의 국그릇으로 덜어 주던 일, 사람마다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하는 엄마가 그 사람의 앞쪽에 해당 반찬을 수북하게 쌓아놓던 일, 누구라도 집에서 늘상 겪어봤을 우리 엄마들의 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할머니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가보자." 우리집에서는 내가 저녁 여덟시에 찬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꾸지람을 들었는데, 서울에서는 엄마가 마치 다시 아이가 된 양 작전을 주도했다. 우리는 검푸른 어둠에 싸인 꿉꿉한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갖가지 반찬이 꽉꽉 들어찬 터퍼웨어 통을 모조리 열고 함께 그것들을 집어먹었다. 밥솥 뚜껑을 열어놓고 그 자리에서 뜨끈뜨끈한 보라색 콩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퍼 넣고, 달콤하게 조린 검정콩, 파와 참기름을 넣고 아삭하게 무친 콩나물, 한입 베어 물면 시큼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오이김치를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퍼먹었다. ... 엄마는 깻잎 조림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 말했다. "넌 진짜 한국 사람이야."

격년마다 한국의 외가를 찾던 딸과 엄마는 어느 여름밤, 한밤중에 '할머니의 냉장고'를 함께 습격합니다. 미국 집에서 엄마가 딸에게 금지했던 일이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옛날에 한국에서 할머니가 엄마에게 금지했던 일입니다. 결국, 엄마도 한국에서는 할머니의 딸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죠. 이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는 분량이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강렬합니다. 술과 담배와 도박을 좋아하던 할머니가 고스톱 담요를 꺼내 놓을 때면 세가지를 다 할 수 있어서 좋아하던 모습, 미국 엄마들과 달리 등짝을 때리고 온갖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던데 거침이 없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결국 자기 속에서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딸의 모습....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p.s. 번역이 정말 좋습니다. 독자 리뷰를 보면 번역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던데, 저는 최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