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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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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많은 사람들이 이 기계 때문에 점점 더 바빠지고, 점점 더 사생활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업무강도도 예전보다 훨씬 세졌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사실은 반대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뉴잉글랜드 대학의 마이클 빗먼과 주디스 브라운 교수는 '휴대전화, 끊임없는 연락수단과 시간의 압력'이란 논문에서 기존의 이런 관념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들은 전화 없이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더 적게 받는다고 합니다. 휴대전화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시간의 압력'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7시에 압구정동에서 보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보신 경험이 있으시겠죠?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런 식의 약속은 흔치 않았습니다. 7시 정각에 압구정역 4번 출구 계단 올라가서 보도블럭 앞, 식으로 정확한 시각과 장소를 정했죠. 그때는 늦기라도 하면 큰일이 났지만, 요즘은 늦더라도 "15분 쯤 늦을테니 근처에 커피숍에라도 가 있을래?"라는 식의 통화가 가능합니다. 확실히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줄어든 셈입니다.

 

휴대전화는 퇴근 후에도 들고 나오기 때문에 여가 시간 또는 개인 생활을 침해할 거라는 우려도 많이 나왔던 지적입니다. 연구자들은 이 부분도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하네요. 앞서 줄어든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휴대전화 사용자와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점을 조사했다면, 이 사생활 침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좀 더 실증적입니다. 조사 대상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직접 분석했던 거죠. 그 결과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업무 시간이 지나면 최대한 공적인 통화를 자제하더라는 겁니다. 서로에 대한 강력한 배려가 작용하는 것이죠. 참고로 연구진은 호주 사람들입니다. 호주의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저부터 6시30분이 넘어가면 일로는 전화를 거는 게 몹시 꺼려집니다.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죠. 게다가 늦은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전화를 가끔 받을 때면 전화 건너 상대방이 누구든간에 그게 공적인 전화일 경우 "쉬는 때 전화를 걸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내용의 인사를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식의 배려가 보편적이지 않은가 싶어요.

 

물론 연구진은 휴대전화가 분명히 업무 강도는 늘렸다고 합니다. 특히나 업무 시간에 외근을 하거나, 자리를 자주 옮기는 직장인의 경우에는 분명히 높아진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있다고 해요.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건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증대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새로 바뀐 질서 속에서 배려하며 살아왔던 거죠. 결국 기술이란 건 이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