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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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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함께 밥 먹게 해주는 스타트업, 셰프가 만든 고급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스타트업, 식당 예약을 해주는 스타트업… 수많은 요식업 관련 스타트업이 활약합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수없이 입버릇처럼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 먹고 사는 일을 혁신하는 회사들이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먹는 음식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일반적으로 푸드테크(Food Tech) 혹은 푸드 스타트업(Food Startup)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종류는 여러가지지만 크게 보면 모두 먹는 경험을 더 즐거운 경험으로 바꾸려는 일입니다. 배달전문 스타트업이 가장 큰 규모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요리를 직접 하거나, 또는 남이 만든 요리를 사먹어야 하는데, 요리를 사먹으려면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배달앱들은 그래서 배달만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맛집’도 메뉴 선택 과정에서 추천해 주고 어디가 맛있는지 ‘리뷰’도 보여줍니다. 주문과 결제 과정의 편리함은 기본이며 배달 소요시간까지 알려줘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렇게 해서 식당의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 소비자도 이익이고 식당도 이익일 듯 합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수료 문제, 리뷰 조작 문제 등은 단골로 제기되는 문제죠. 이 정도는 예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달 음식이 '식당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소송까지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 서부에서 인기를 끈 햄버거 체인점 인앤아웃은 최근 도어대시라는 음식배달 스타트업을 고소했는데, 도어대시가 인앤아웃의 로고를 대가없이 사용해 브랜드 가치를 도용했고 배달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인앤아웃 음식을 배달하면서 소비자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였습니다. 식당 입장에서는 좋은 음식을 집에서 편하게 먹도록 한다는 푸드 스타트업이 오히려 식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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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햄버거를 배달하면 식어서 맛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식을 단순 배달해주기 보다는 소비자가 음식을 먹게 될 순간의 경험까지 고려해 조리에 반영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먼처리(Munchery) 같은 스타트업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반조리 상태의 음식을 각 가정에 배달합니다. 15분 동안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모든 걸 만들어서 배달하는 먼처리는 고기도 미리 썰어놓고 빵도 구워놓은 채로 음식을 포장합니다. 소비자는 이 음식을 받아서 조립하듯 재료를 잘 배치해 가열만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음식은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고안하는 특별한 레시피에 따라 준비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레스토랑 수준의 식재료 준비 및 양념이 모두 끝난 음식을 집에서 조금만 더 손 보면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으니 인기를 끌 수밖에요. 단순 배달음식보다 최종 완성된 요리의 수준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어서 최근 먼처리와 비슷한 스타트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tSR0UukQU2Q]

요리 준비를 누가 대신 해준다면 나도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을 수 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은 이렇게 해결한다고 쳐도,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맛집 정보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역시 미디어죠. 신뢰도가 중요하고, 변화되는 환경에 따라 업데이트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내 취향과 잘 맞는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최고입니다.

예전에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옐프(Yelp)였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서비스들이 옐프에게서 배우고자 했죠. 믿을 만한 리뷰의 관리, 새로 생긴 음식점과 문 닫은 음식점 업데이트를 빠르게 도와주는 충성스런 사용자 커뮤니티 등. 하지만 요새는 모든 푸드 스타트업이 일종의 미디어가 됐습니다. 배달앱은 배달음식점 리뷰앱이 됐고, 식재료 장보기 앱은 좋은 식재료 가게의 리뷰앱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의 레스토랑 리뷰를 하는 스타트업은 뉴미디어처럼 변화합니다. 뉴스나 정보지 못잖은 기능을 갖추면서 진화하는 것이죠. 독자에게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뉴스를 보여준다거나, 뉴스를 하나 읽고 나면 관련 뉴스를 추천해 주는 뉴미디어 서비스처럼 레스토랑 리뷰 서비스들도 진화합니다. 평소 라자니아를 잘 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새로 생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추천해주고, 단골 중국 음식점의 예약이 꽉 찼다면 다른 레스토랑을 추천해주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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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목숨 거시는 사장님...

한 술 더 떠 레지(Resy) 같은 스타트업은 원하는 식당에 원하는 날짜 예약을 바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냥 예약하려면 한 달은 미리 앞서서 예약해야 하는 인기 레스토랑들이 대상입니다. 비결은 단순합니다. ‘예약비’를 따로 받는 것입니다. 레스토랑 입장에서 예약을 적게 받는 이유는, 일반적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생기는 이른바 ‘노쇼’(No-Show) 고객들 때문입니다. 나타나지 않는 고객들이 손해를 주니까요. 반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빈 자리를 찾는 고객은 식당 앞에서 줄을 서야 하죠. 레지는 예약 과정에 돈을 받으면서 이런 불편을 해결해 줍니다.

말이 나온 김에 식당에서 돈을 내는 과정도 한 번 볼까요? 한국에서야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나면 계산대로 나가서 돈을 냅니다. 이게 일반적이죠. 반면 미국에선 다릅니다.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주문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 뒤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현금 혹은 신용카드를 내죠. 그러면 계산을 마친 영수증을 종업원이 다시 가져다 줍니다. 여기에 팁을 남겨놓고 일어서야 계산이 끝납니다. 식사를 다 마친 뒤부터 진행되는 이 과정은 길면 10분 이상도 걸립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속이 터질 노릇이죠.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커버(Cover)라는 스타트업은 이 결제 과정만 담당합니다. 커버의 약 300개에 이르는 가맹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이 식사가 끝나면 커버 앱으로 결제를 하고 그냥 일어섭니다. 애플페이로 낼 수도 있고, 신용카드 결제도 괜찮습니다. 미리 식당을 골라놓은 뒤 식당에 들어가면서 “커버로 낼 거에요”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주문한 음식은 자동으로 계산되고, 팁도 식사중 몇 퍼센트를 줄지 정하면 됩니다. 친구들끼리 나눠내기 기능도 지원하죠.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순한 편리함 때문에 이 회사는 이미 매월 200만 달러 이상의 결제를 처리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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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고 바로 돈 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된다니!

하지만 어떤 스타트업들은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과연 맛이란 무엇일까, 영양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이들에게 맛은 ‘요리사의 손맛’이라기보다는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분자구조의 화학적 결합입니다. 영양이란 목초를 먹으면서 청정 지역에서 자라난 1등급 한우 대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단백 식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좀 드라이하고 멋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게 음식의 미래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모던메도우(Modern Meadow)라는 회사는 현대식 초원이라는 이름 뜻에 걸맞게 고기를 ‘생산’합니다. 푸른 풀이 가득한 초지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생산한다는 것이 차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나 돼지 등 육류에서 떼어낸 생체조직을 배양해서 3D 프린터로 고기 모양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이들의 일입니다. 마치 샬레 위에서 세균을 배양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렇게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 다진 고기 등을 실험실에서 공장처럼 생산하는 세상을 만든다면 공장식 축산의 폐해도 줄어들고, 고기 생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물과 곡물의 낭비도 줄어들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인류가 좀 더 지속가능한 삶을 살게 되겠죠.

아무래도 실험실에서 세균 배양하듯 배양하는 고기는 좀 꺼려진다면, ‘진짜 단백질’인 곤충으로 만든 고기는 어떨까요? 식스푸드(Six Foods)라는 회사는 하버드 동기생 세 여성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들은 여섯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야말로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회사 이름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바로 곤충 얘기죠. 이들이 처음 만든 음식은 처프칩(Chirp Chips), Chirp는 곤충소리의 의성어이니, 한국어로 옮기자면 귀뚤귀뚤칩 정도가 되려나요. 콩과 쌀 구운 귀뚜라미가 원료인 이 칩은 소금맛, 비비큐맛, 체다치즈맛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일반 감자칩과 비교해 단백질 함량이 세 배가 넘는다고 하니, 술안주나 심지어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겠네요. 징그럽다고요? 식스푸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곤충을 이미 먹고 있는지 강조합니다. 빨간색 식용색소의 거의 전부가 연지벌레로 만들어집니다. 시금치통조림이나 가공음식 대부분이 일정 수 이하의 벌레가 함께 가공되는 걸 용인해서 만들어지고 있죠. 곤충을 먹는다고 큰 일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우린 이미 벌레를 많이 먹고 있다는 겁니다.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oDMbZJZ9Vvg]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수차례 씩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죠.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먹는 일을 다루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이 행복해지는 일이 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