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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의 작가들이 책을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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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골방에 앉아서 참고 서적을 뒤적이며 머리를 싸매고 책을 쓰는 풍경...이젠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미 몇몇 작가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았던 '괴짜경제학'이란 책의 저자 스티븐 레빗과 스테픈 더브너의 경우를 보죠. 이들은 최근 '슈퍼괴짜경제학'(Super Freakonomics)이라는 새 책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출판될 예정이라며 자신들의 블로그에 새 책의 표지 사진도 올려놓았습니다.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뉴욕의 범죄율이 줄었다던 도발적인 주장을 가득 담았던 괴짜 경제학보다 주제의 선정성은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아닌 '지구냉각화', 애국적 창녀, 자살폭탄테러범이 생명보험에 들어야 하는 이유...

괴짜경제학이 나온 게 2005년입니다. 4년 동안 인터넷도 많이 발전했고, 이들이 새 책을 쓰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각종 연구자료를 뒤져가며 오프라인 실험을 통해 책을 썼는데, 이번 책은 많은 부분 블로그를 통해 자료를 모았습니다. 질문을 자신들의 블로그에 던져놓고 블로그 독자들이 반응하는 내용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한 실험에 참여해 달라는 공지도 블로그에 올려 실험 참여자를 모았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토론을 벌이는 과정이 블로그에서 진행된 건 물론입니다. 새 책의 저자는 여전히 레빗과 더브너지만, 사실 네티즌들과 함께 책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이런 일을 잘 하는 작가가 또 한 명 있습니다.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입니다. 크리스 앤더슨은 '와이어드'라는 미국의 유명 IT잡지 편집장인데, '롱테일'이라는 개념을 와이어드 지면을 통해 가장 먼저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같은 제목의 책을 출판합니다. 잡지에서보다 사례도 풍부해졌고, 논리도 정교해졌습니다. 와이어드 기사가 촉발한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반박 논리가 등장하고, 재반박이 이어지고, 사례가 계속 쏟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사람은 최근 '공짜'라는 책을 냈습니다. 역시 몇 달 전 와이어드에 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간 뒤였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경제는 모든 것을 공짜로 만들 거라는 예측이었죠. 이코노미스트 등 정통 경제 잡지에서도 대대적으로 이 기사를 소개하고 크리스 앤더슨을 인터뷰하면서 이 또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례가 이어지고, 논리적 반박과 재반박이 꼬리를 물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던 건 크리스 앤더슨 본인이었을 겁니다. 그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여유로이 바라보며 한 권의 책을 써내면 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이 모든 자발적 참여에 대해 크리스 앤더슨이 지불한 비용 또한 '공짜'였습니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이렇게 책을 쓸 수는 없습니다.(저도 이 블로그에 '스티브 잡스'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뒀으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죠.^^) 책의 주제마다 접근 방법도 다를 테고요.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방법도 있다는 것만큼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공짜 경제학과 슈퍼괴짜경제학이 한국에도 빨리 번역돼 나오기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