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과 커뮤니티
by 김상훈
언제 한 번 정리하려고 했던 이야기. 벌써 5년 전 Vingle 시절 이야기들.
-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당시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해놓고는 그저 네트워킹을 한다. 네트워크는 무엇을 다루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누가 거기 있느냐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조금 더 좁혀서 말하자면 '좋은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의 핵심을 커뮤니티로 보고 있었다. 인터넷을 네트워크로 인식하면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프라인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커뮤니티로 본다면 좋은 컨텐츠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작가의 영역이지만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기업가의 영역이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성공한다.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고객(유저, 방문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물건을 사달라고 하거나, 회원 가입을 부탁하는 식이다.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할수도 있고, 해시태그를 걸고 게시물을 올리면 상품을 주겠다고 꼬실 수도 있다. 대가로 지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커뮤니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 부탁 대신 '존경'이 필요하다.
“OO님의 글을 출처 표기하고 인용해도 될까요?”
이것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이다. 꼭 퍼가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이 허용하는 공유하기, 리트윗 등이면 충분하다. 더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이 컨텐츠 봤어요? 정말 좋아요, 같이 공유해요”라고 권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할 일을 줘야 한다. 관리자가 게시물에 답변하고 있다면 커뮤니티는 실패한 것이다. 게시물에 사람들이 답변하고 있어야 커뮤니티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뭔가 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이다.
- 경품 대신 기대감
물론 사람을 모으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경품을 뿌려서 사람을 모으면 안 된다. "5만 원 상품권 100장이 쏟아집니다"보다 차라리 "경품으로 상품권 잘 받을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 커뮤니티를 위한 사람을 모으는 핵심 요령이다. 커뮤니티는 기대감으로 성장한다. 경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는 기대감은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지만, 경품 자체가 리워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커뮤니티를 찾아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핵심이지, 답을 바로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답을 얻으면 바로 떠난다. 커뮤니티에 질문이 올라오면 다른 구성원들이 답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질문을 이어가면 된다.
"에어컨 새로 사려는데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에 “XX사의 무풍에어컨을 사세요”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값싼 에어컨은 전기값이 많이 나온다던데 사실인가요” 식으로 질문하면 답변과 질문이 이어진다.
- 첫번째, 두번째 추종자의 중요성
https://youtu.be/fW8amMCVAJQ 이 영상은 커뮤니티의 형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 혼자 하는 일은 바보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한 명이 용기있게 동참하는 순간 '이상한 일'은 한 번 더 시선을 돌릴 만한 일이 된다. 이 첫번째 추종자는 친구를 불러와 '둘이 하던 이상한 일'을 '셋이 하는 집단 행동'으로 바꿔놓는다. 여기에 네번째 다섯번째 사람들이 동참하는 순간 바보같은 일은 모멘텀을 얻게 되고, '운동'이 된다.
커뮤니티에서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니, '가장 인기있는 정답을 가장 빨리 내놓는 사람'에게는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알아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좋은 커뮤니티 관리자라면 2등에게 주목해야 한다. 2등으로 좋은 답변은 첫째에 묻힌다. 1등보다 늦게 게시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1등보다 덜 선정적인 답변이라 그럴 수도 있다. 인터넷이 원래 그런 곳이다. 그 때 관리자들이 2등에게 관심을 쏟는다면 이들은 ‘나를 알아주는 커뮤니티’와사랑에 빠진다. 실력은 1등과 다를 바 없는 멤버가 말이다. 그러니 2등 멤버들을 대접해야 한다. 이들은 친구들을 불러온다.
-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은 사람들을 유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신규 방문자에게 '15분 이내'에 인사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빨리 인사하고 싶도록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친절하고 내게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라면 재방문하고 싶지 않을까.
- 커뮤니티는 게임이다.
Gamification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커뮤니티 게임화의 핵심은 '게임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게임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은 유저가 프로필을 작성할 때, 계속 뭔가 더 채우라고 요구한다. 90%까지는 쉽게 채울 수 있고 재미있지만 절대로 100%는 차지않는다. 뭔가 조금 남겨두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처럼 시스템을 설계한다. 이걸 채워서 100%를 만들어도,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항목을 채우라고 요구한다. 이걸 채우는 과정 자체가 재미다.
게임화의 또 다른 핵심은 대단함이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야 한다. 페북이나 링크드인 프로필을 채우다보면 “와, 나 좀 대단한 걸?” 하는 생각이들 것이다. 그런 경력, 취향 등을 쓰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시판을 만들어서 가장 게시물을 많이 쓴 멤버 10위까지 순위를 공개한다면 그건 큰일이다. 물론 1등은 대단하지만 커뮤니티는 혼자 대단한 곳이 아니라, 함께 대단한 걸 만드는 곳이다. 순위가 강조되면 사람들은 협조하지 않는다. 순위나 레벨을 공개하거나 부여하려면 이것이 협조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많이 누른다거나, 댓글을 많이 다는 것들이 보상의 대가여야 한다.
- 중요한 것은 문화야, 바보야.
흔한 착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착각이다. 사실과 다르다.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좋아서 찍은 대통령'이 아닌 '저 사람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찍은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던가. 물론 좋아서 고르는 것도 많다. 하지만 훨씬 많은 선택이 “싫어하지 않는 것”을 향해 이뤄진다.
커뮤니티의 문화가 딱 이렇다. 방문자들은 자신이 뭘 좋아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커뮤니티는 무언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커뮤니티 참가자들은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다. 내가 메이저리그 야구 팬이라 KBO 야구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야구를 싫어하지 않으니 KBO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케이팝을 싫어하지 않으니 ARMY도 될 수 있다.커뮤니티는 이렇게 싫지 않은 사람들의 교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가 중요하다. 무언가가 싫어졌을 때 사람들은 떠나고 커뮤니티는 붕괴된다. 문화는 규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규칙을 지키라며 호통치는 완장들만 등장하고 문화는 더 나빠진다. 하지 말라, 안 된다는 얘기는 금물이다. 부정적인 말은 커뮤니티를 갉아먹는다. 긍정적인 모범이 문화를 만든다.
- 질문의 기술
커뮤니티의 핵심은 '참여'다. 내가 아니라 남들이 움직여야 한다. 시작은 사람들을 토론에 동참시키는 일이다. 토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앞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쉽게 끝나는 질문은 해선 안된다. “방탄소년단이 최고라고 생각하시죠?” 이런 질문은 바보같다. “2010년대 최고의 케이팝 밴드는 누구일까요?”는 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이다. 쉬운 도움을 요청하면 사람들이 참여한다. 더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직접 대답하는 대신 "그런 건 OO님이 잘 아시니 한 번 물어보세요"라면서 OO님을 태그하는 것이 훨씬 좋다.
- 습관의 힘
규칙적인 반복에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월요일엔 주간 박스오피스 뉴스 정리, 화요일엔 이주의 기대작 토론, 수요일엔 예매1위 영화 예측 설문조사, 목요일엔 가장 좋아하는 (감독, 각본, 남우, 여우, 신인 등) 투표 등등. 이런 규칙은 멤버들에게 '늘 새로운 게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심지어 커뮤니티의 성장에 따라 규칙적 섹션의 일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책임감과 규칙적 재방문의 이유를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수준부터 '내가 일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성장'이 가능해진다.
- 성장의 위험
'고드윈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온라인에서 논쟁이 길어지면 반드시 누군가 '나치'와 '히틀러'를 들먹인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좌빨', '일베', '수좀', '페미나치' 등 관련 어휘 목록이 줄을 잇는다. 성장은 반드시 이런 고통을 동반한다. 이른바 '인터넷 트롤'의 등장이다. 트롤이 모두 처음부터 트롤인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처음에는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 집단에 해당한다.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처음부터 이들에게 문화를 교육해야 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개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DM 등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마 더 좋은 반응을 얻으실 거에요"라는 메시지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