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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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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3억 달러를 투자해서 미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을 건설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기존에도 구글은 이런 사업을 꾸준히 해왔지만, FASTER라는 이름의 이번 사업은 조금 다르다. 전송 속도가 초당 60테라비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략 기존 해저케이블의 20배 정도 속도다. 이렇게 여기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야 당연하다. 해저케이블이야말로 글로벌 경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해저케이블은 국가간 인터넷 연결의 99% 이상을 담당한다. 초당 테라비트급으로 정보를 전송하는 해저케이블과 비교하면, 특히 이번의 Faster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위성 인터넷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그리고 현대의 국가간 통신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대부분 인터넷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전화망보다 훨씬 값싼 데다 더 많은 정보를 실어나르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를 대신하는 왓츠앱이나 라인은 물론이고, 국제전화와 화상회의도 스카이프와 행아웃이 대신한다. 투자은행들은 0.01초 혹은 그 이하의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에 따른 차익거래 이익을 실현하려고 런던과 뉴욕 증시를 연결하는 대서양 해저케이블을 자신들만의 전용선으로 연결할 정도다. 그러니 구글이 해저케이블에 투자한다는 건 글로벌 사업이 구글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인 동시에, 이런 투자가 고도화될수록 구글과 같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중국이 있다. 시스코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터넷 트래픽을 쓰는 지역은 아시아다. 중국은 이 가운데 6억 명 이상의 인터넷 사용자를 갖고 있다. 이에 더해 이 중국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80% 이상이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다. 지금 가장 뜨거운 산업 분야는 인터넷이고, 모바일이다. 이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수는 이미 미국의 총 인구를 넘어선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자신들의 인터넷을 세계와 차단해 놓고 있다. 이른바 황금방패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The Great Firewall', 즉 만리장성(The Great Wall)을 풍자한 이 이름은 거대한 방화벽이란 뜻인데, 말 그대로 외국의 모든 인터넷 서비스가 중국 사용자에게 접근하는 걸 막는다. 물론 각종 편법으로 외국 서비스를 쓸 수야 있지만 대부분의 중국 사용자는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대신 그냥 중국 인터넷 서비스를 쓴다. 그렇게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은 철저한 중국 내수 시장이 됐으며, 세계와 격리됐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날 이유는 없다. 그건 섬나라의 이야기고, 중국은 대륙인데다 시장도 이미 미국보다 크다.(게다가 미국보다 빨리 성장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대 규모를 갖춘 인터넷 기업이 성장했다. 중국의 만리방화벽 안에서 적절히 보호받으면서, 하지만 자신들끼리는 무섭게 경쟁하면서. 그러니까 중국 기업들은 세계 다른 모든 나라 기업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그만한 시장을 두고 자국 내에서 경쟁이 가능하다. 그리고 필요하면 샤오미가 구글의 휴고 바라를 스카우트하듯, 텐센트가 한국 기업들을 쇼핑하듯, 인터넷 선진국에서 필요한 역량만 빼오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시장(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 시장(미국 및 기타 국가)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시대다. 구글로서는 세계의 바다 아래에 모든 해저케이블을 전부 직접 깔아서라도 이 시장을 하나로 엮으려고 난리다. 성장하려면 중국이 필요하고, 아시아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중국은 다 필요없다며 문을 걸어잠근 상태다. 자신들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역량을 키울 때까지는 구글 혹은 미국 기업들과 정면 대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냉전 때보다 더한 상황 아닐까.

이 상태로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중국이 선별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다면, 그 때 한국 기업들은 어디에서 인터넷 사업을 벌이려 할까. 가깝고 규모와 발전 가능성도 큰 중국에서 사업의 기회가 클까, 아니면 거리도 먼데 성장마저 정체된 미국과 서유럽에서 사업을 벌이려 할까.

인터넷은 세계를 평등하게 묶어주는 네트워크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21세기 들어서 인터넷은 둘로 갈린 셈이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면서. 물샐 틈 없는 통제만 통제가 아니다. 중국처럼 정부의 의도대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사용자의 사용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도 인터넷 선진국들과 그 혜택을 받은 기업들로서는 처음 겪는 곤혹스러운 상황일 테니까. 그러니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과연 현실일까, 아니면 그동안 순진했던 환상에 불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