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우리 집 좀 털어 주세요
by 김상훈
가끔 두렵습니다. 모든 것이 검색되고, 모든 것이 공개된 세상이란생각 때문이죠. 저는 얼굴이나 이름, 이메일 주소 등이 어차피 신문에 공개돼 있으니 괜찮지만, 구글 검색을 몇 단계 거치면 제 가족과 제 친구들까지 줄줄이 따라나온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합니다. 이런 걸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 속어로는 '신상털기'라고 한다죠? 이런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타인의 사생활을 파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위 사진은 로버트 스코블이란 사람의 플리커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로버트 스코블은 IT 벤처에서 일하면서 업계에 관련된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던 중 마이크로소프트의 빅 군도트라(현재 구글의 부사장)에게 블로그 내용으로 눈에 띄어 스카웃된 사람입니다. 저 사진을 보니 제 아들이 생각났습니다. 제 아들도 딱 저만한 나이인데, 저도 우리 아기의 사진과 성장 과정을 열심히 아내와 함께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널리 공개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그저 멀리 떨어진 할머니가 쉽게 손자의 사진을 보게 하고, 가족들과 아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한 의도였는데, 저 사진을 보니 뒷통수가 딩 하고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갑자기 제가 지금껏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지네요. 저는 아직 말도 못 하는 제 아들의 인생을 제 마음대로 세상에 폭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저와 제 아내는 계속 블로깅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젊은 부모가 아이들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할 겁니다. 그게 이 시대의 문화니까요. 하지만 아마도 블로그를 비공개로 돌리고 친지 어르신들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시무시한 사례는 우리 아이들만의 경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주의한지 알려주는 사이트도 생겼습니다. 이른바 '제발 우리 집 좀 털어 줘 닷컴'(http://pleaserobme.com)입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우리의 집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공개합니다. "오늘 아침 비행기로 가족과 함께 하와이에 놀러왔어요. 우와! 정말 신나요!"라는 얘기를 멋진 야자수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올려놓는다고 가정해보죠. 누군가는 "와우! 저도 신나요. 그 집 비었군요!"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맺는 관계란 것이 오프라인에서 맺는 관계처럼 서로의 실명과 직업, 살아온 과정을 아는 관계보다는 훨씬 더 느슨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니다.
이 사이트는 실제로 집을 훔치라고 알려준다기보다는 오늘날의 SNS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보고 있으면 끔찍합니다. 일본의 오카다 칸토쿠 씨는 2분 전 집을 나와 전철역에 도착했군요. '포스퀘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천하에 공개하게 됩니다. 물론 설정을 통해 공개를 최소화할 수는 있지만, 이 서비스는 많이 공개하는 옵션이 디폴트입니다. 조금 생소하실지는 몰라도 이미 한국에서도 포스퀘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상당수 계십니다.(물론 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더 섬찟합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우리의 사생활을 세상에 공개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러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저자 돈 탭스콧은 이 책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가능성을 칭찬하면서도 사생활 공개에 어떠한 두려움도, 거부감도 느끼지 않는 특성 한 가지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우려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저 나이든 사람의 기우라고 생각하며 그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닙니다. 이거 정말 위험해 보이네요.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부주의하고 무지한데, 훨씬 더 변화된 환경에서 자라날 우리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