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점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변해가는 구글
by 김상훈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 행사에서 가장 큰 전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는 전자업체인 소니나 삼성전자가 아닙니다. 두 회사의 전시공간도 입이 딱 벌어질만큼 크지만 정작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한 건 마우스나 키보드, 엑스박스를 빼놓고는 별다른 전자제품을 만들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게다가 CES에 참석한 전 세계 전자업계 사람들과 언론사 앞에서 한 해 전자산업의 미래를 설명하는 기조연설자로 매년 초청되는 유일한 업체가 바로 마이크로소프이기도 하죠. 올해 MWC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글은 거대한 전시공간을 빌려 안드로이드로 이를 꽉 채웠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글의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슈미트가 수많은 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업체 관계자들 앞에서 기조연설을 합니다. 구글이 통신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된 셈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CES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PC에 머물고 있는 자신들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다양한 전자제품으로 확대하고 싶기 때문이죠. CES에 참가하는 전자업체들은 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제휴를 앞세워 광고합니다. 빌 게이츠가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를 들고 나오고, 삼성전자의 TV에 엑스박스를 연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게 국내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똑같은 일을 구글이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서 수많은 업체들이 안드로이드 로봇 인형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구글폰인 '넥서스S'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소니는 안드로이드폰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할 수 있게 했다며 "기쁘다"고 강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가 점점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구글이 빠르게 빼앗고 있는 셈이죠. 사실 원래 통신사 위주의 행사였던 MWC가 세계적인 전자업체들과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쇼로 변한 것도 구글이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입니다.
구글은 단순히 전시회 참가 전략에서만 마이크로소프트를 닮아가는 게 아닙니다. 산업을 재편한다는 측면에서도 비슷합니다. 올해 MWC의 화두는 업체들이 내세워 자랑하지는 않지만 '가격전쟁'입니다. 똑같은 안드로이드 태블릿을(따라서 기능 차이도 크지 않은 제품을) 모토로라는 800달러에 만들어 판매하고, 중국의 화웨이는 300달러에 팔 계획입니다. 소비자가 90만 원짜리 갤럭시S를 팔던 삼성전자가 올해는 150달러(약 17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만들거라고 선언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리미엄제품'이었던 스마트폰이 통신사 대리점 두세곳만 돌아다니면 어렵잖게 건질 수 있던 '공짜 폴더폰'과 똑같아진 셈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1980년대 이후 지겹게 봐왔습니다. MS-DOS와 윈도로 이어지던 마이크로소프트 제국 시절 PC제조업체들이 끊임없는 가격경쟁을 벌이던 모습이었죠. 그 결과 제조업체는 모두 쓴맛을 봤습니다. IBM은 PC사업부를 중국 레노보에 팔아치웠고, 컴팩과 HP는 서로 합병할 수밖에 없었으며, 새로운 왕자인 줄 알았던 델은 에이서같은 대만업체의 추격에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상황을 즐기며 떼돈을 벌었죠. 휴대전화 사업도 똑같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업데이트가 이어지면서 노키아는 회사를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에 갖다 바쳤고, 모토로라는 휴대전화 사업부를 떼낸 뒤 끊임없는 매각설에 시달리는 상태며, 순식간에 세계3위까지 성장하던 LG전자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야할지 갈팡질팡하는 와중입니다. 구글은 이런 상황을 즐기며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쓰기 시작했고, 컴퓨터 학원에서 "이것이 컴퓨터"라며 윈도 사용법과 MS워드 사용법을 가르쳤습니다. 블루스크린에 짜증을 내고 액티브엑스에 갑갑함을 느껴봐야 별 수 없었죠. 세상은 그냥 그들의 천하가 됐습니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를 빼앗는 세상에서도 그런 갑갑함이 벌어지려나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리고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마이크로소프트 때보다는 조금 더 높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서 그러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은 구글이란 절대권력의 선의에 달려있다는 사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