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하세요
by 김상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요즘 우리는 점점 전화를 피한다. 전화는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 아무 때나 벨을 울려 상대의 흐름을 끊어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요즘 일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저녁에 남의 집에 전화를 거는 건 '전화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했고, 일단 걸려온 전화를 빨리 받지 않아도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요새는 이런 일이 없다. 나만해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기 일쑤고, 집에는 유선전화가 아예 없다. 기본적으로 '당장 나와' 식으로 호출해서 서로 본론을 꺼내기 전, 안부 인사를 주고 받아야 하는 목소리 커뮤니케이션이 현대 스마트폰 사회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보인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회사 선배들이 이런 좋은 기사도 썼고, 나도 이 기사 내용에 꽤 많이 동감했다. 그런데 꼭 전화는 구시대적이고 나쁜 것일까? 오늘 발견한 HBR블로그에 올라온 이 글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즉, 전화를 하기 전에 e메일로 전화 걸 시간 약속을 미리 정하는 건 정말 비효율적인 일이고, e메일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건 뉘앙스가 사라져 오해를 키우기 쉽다는 것이다. 여기까지야 흔히 나오는 얘기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창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우연한 만남과 대화다. 오가면서 벌이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스파크처럼 생겨나는 잡담 속의 아이디어가 창의적 사업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기업들은 사무실을 설계할 때 일부러 모든 부서의 회의실을 한 곳에 몰아놓고 직원들이 서로 만나게 동선을 짠다거나, 자판기 앞에 수다를 떨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거나, 푸스볼 기계를 회사에 가져다 놓고 서로 어울려 놀도록 만든다. 직원들 사이의 우연한 면대면 접촉이 가져오는 시너지가 높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굳이 멋진 회사 건물을 만들어서 정규직을 채용해 함께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모든 걸 아웃소싱하면 되지 않겠나.
그러니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도 한 발 더 나가보자는 게 이 블로그 저자의 생각이다. 뭔가 생각날 때, 혹은 지나가다 궁금할 때, 그냥 전화를 걸어 몇 마디만 한다면?
If you want to be innovative today, if you want to take a risk, if you want to exercise your courage, try calling someone with whom you have an issue to discuss. Do it without an appointment. Just call them up and have a conversation. And when your phone rings, pick it up. Open yourself up to the possibility a phone call offers. Discover this remarkable device called the telephone. It will give you a serious competitive advantage.
그러니까 오늘날에는 그냥 전화를 건다는 행위 하나가 경쟁력을 길러주는 훈련이 됐다는 얘기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정신도 길러준다. 방법은 단순하다. 그냥 전화기라는 훌륭한 기계가 주머니 속에 있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그 다음 할 일은 번호를 누르는 것 뿐이다. 아, 요즘은 이름만 터치하면 끝나지!
p.s. 혹시 오해하실까봐 덧붙이자면, 기업 홍보팀 분들과 홍보대행사 분들께서는 충분히 문자메시지로 대체 가능한 "보도자료 보낸 것 확인 부탁한다"는 전화는 하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그다지 혁신적인 대화로 이어질 것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