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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장을 위협하는 로봇, 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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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기계양의 꿈을 꾸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 사람과 같은 자리에 서서 일할 수는 있게 됐다. MIT에서 만든 이 로봇 '백스터'(Baxter)는 기존의 로봇과는 아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위험하지 않고, 둘째,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과 의도를 알리며, 셋째, 빠르고 정확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값이 싸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 있던 로봇들은 사실 정반대였다는 얘기다. 로봇은 이미 위험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일했으며, 빠르고 정확했다. 로봇이 가장 널리 쓰이는 분야를 생각해보자. 바로 공장이다. 공장의 로봇 주위에는 늘 경고 표지판과 접근금지 라인이 그어져 있다.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로봇의 힘이 워낙 세고, 엄청난 힘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쇳덩이는 피와 살로 이뤄진 연약한 인간의 육체 따위는 실수라며 순식간에 찢고 부숴버렸다. 주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적어도 수억원에 이르는 기계였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했던 이유는 속도와 정확함을 위해서였다.

백스터는 다르다. 바퀴 다리와 커다란 두 개의 팔, 얼굴을 대신하는 액정화면으로 이뤄진 이 기계는 기존의 로봇과 비교하면 약골이다. 엄청나게 많은 팔 관절에는 힘 감지 센서가 수십개가 달려 있어서 움직이다가 예상치 않은 저항에 부딪히면 곧바로 실행이 정지된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뭔가 툭 치면 무조건 멈춘다는 얘기다. 그러니 백스터는 사람들과 함께 같은 생산라인에 서서 일할 수 있다. 실수로 사람을 건드릴 때면 마치 미안한 듯 동작을 멈춘다. 게다가 눈과 표정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백스터가 굳이 액정화면으로 된 얼굴을 단 것 또한 사람들과의 협업을 위해서다. 백스터의 눈은 다음에 할 작업 방향을 쳐다보고, 백스터의 고개는 현재 하고 있는 작업으로 향한다. 마치 사람처럼. 백스터가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동료를 볼 때처럼 이 로봇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신 속도와 정확함은 희생됐다. 안전을 위해 백스터의 움직임은 매우 둔해졌고, 쉽게 멈추는 특성과 수많은 관절 탓에 백스터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오차를 갖게 된다. 하지만 로봇의 가장 중요한 특성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백스터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전기만 들어온다면 24시간 365일 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대 당 가격은 2만2000달러에 불과하다. 약 2400만 원인데,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이 정도 비용은 각종 보험 등의 비용을 포함한 근로자 1명의 6개월 고용 비용에도 미치지 못한다.

[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rjPFqkFyrOY]

그러니까 백스터가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동영상에도 나오듯 이 제품을 만든 리씽크로보틱스 사는 백스터가 미제(Made in USA)임을 강조한다. 더 이상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MIT 교수였던 리씽크로보틱스의 창업자 로드니 브룩스는 말 그대로 로봇을 다시 생각했다. 힘세고, 빠르고, 정확하지 않다면 로봇은 충분히 경제적이란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로봇을 공장에 사용해 왔던 가장 큰 이유는 로봇이 힘세고, 빠르고, 정확했기 때문이었음을 감안하면 왜 이 회사의 이름이 Rethink인지 이해가 간다.

리씽크로보틱스는 내년 1월부터 백스터 SDK(소프트웨어 개발도구)를 만들어서 배포할 계획이다. 지금도 백스터에게 일을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다. 공장의 숙련공이 백스터의 손을 잡고 특정 동작을 반복해서 가르친 뒤 이런 동작들을 버튼 몇 개로 연결하면 백스터는 해당 작업을 반복한다. SDK가 세상의 수많은 개발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백스터가 할 일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바에 서서 칵테일을 만들어준다거나, 빨래를 대신 걸어주는 일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