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것은 버리는 것,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차이
by 김상훈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와 팟캐스트, 앱스토어를 통해 애플이 성공했다고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는 아이팟이 나온지 3년 뒤에야 등장했고, 팟캐스트는 아이팟 사용자들 가운데에서 화제를 모은뒤 반년이 넘어서야 공식적으로 아이튠즈를 통해 지원됐으며, 앱스토어는 아이폰 발매 1년 후에야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애플은 '생태계'를 만들어서 성공한 회사라고 주장하고 싶어도 사실 그들은 생태계를 '만든' 적은 없는 셈입니다. 정말 좋은 하드웨어를 만들자 자발적인 팬들이 그 제품을 120%씩 활용하고 싶어했고, 애플은 이들을 위해 팬들이 만든 서비스를 '애플식으로' 사용하기 편하게 바꿔놓았던 게 전부이기 때문이죠. CD를 굽는 게 불편해 인터넷에서 음악을 수백곡, 수천곡씩 다운로드받는 아이팟 팬들을 위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열었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MP3와 동영상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남들과 공유하던 팬들이 만든 '팟캐스팅'도 한참 후에야 아이튠즈에 추가했습니다.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새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들도 앱스토어를 통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퍼뜨릴 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고요. 애플은 멋진 하드웨어를 만드는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향후 소비자들의 요구를 재빠르게 반영했을 뿐이지요. 애플이 애초에 이런 서비스를 만들 능력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나중에 이렇게 소비자들이 아이디어만 제시하다시피 한 제품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시키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만 이들은 처음에는 모든 능력을 제품 개발에만 집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애플이 1997년 파산 직전에 기사회생하게 된 것도 수많은 잡다한 제품라인을 아이맥, 파워맥, 아이북, 파워북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때부터입니다. 제품 개발 역량 전체를 단 네 종류의 제품에 모두 쏟아부었던 거죠. 맥미니, 맥북에어 등이 나온 건 한참이 지나 회사가 현금을 갈퀴로 쓸어담기 시작한 이후의 일입니다.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한 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지난 1년이 생각나서입니다. 얼마 전 두 회사가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갤럭시S를 1000만 대, 갤럭시탭을 200만 대 이상 팔아치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상반기 '스마트폰 쇼크'라고 불렸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 200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꿋꿋하게 성장했습니다. 아직도 눈 앞에 노키아가 있지만 계속 시장을 잃고 있는 '지는 해' 노키아와는 달리 삼성은 세계 1위를 향해 계속 치고 올라가는 중이죠. 반면 LG전자는 아직도 쇼크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습니다. 계속 적자폭을 늘리며 간신히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쇼크 이후 본질적으로 삼성전자가 예전과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 변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삼성전자는 갤럭시A와 갤럭시S, 두 종류의 스마트폰을 만들었고 모든 마케팅을 갤럭시S에 집중했습니다. 키보드가 있고, 없고, 스크린이 크고, 작은 등 수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갤럭시S"라면서 "통신사별로 약간의 차이를 뒀을 뿐"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심지어 구글과 손잡고 선보인 '넥서스S'조차 미국 시장에서는 '갤럭시S의 구글판'으로 알려졌죠. 그 결과 갤럭시S는 삼성전자의 대표 스마트폰이 됐고, 수많은 변종을 하나의 모델이라고 소개한 전략이 먹혀 들어 갤럭시S는 1000만 대 이상 판매된 모델이 됩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껍데기를 바꾸고, 작은 기능을 추가하고 빼가면서 통신사별로 대동소이하게 만들어 판매했던 일반 휴대전화(피처폰) 시절의 다품종 판매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체 키보드가 있는 갤럭시S와 키보드가 없는 갤럭시S가 블루투스가 되는 컬러 폴더폰과 블루투스 기능이 없는 컬러 폴더폰 사이의 차이보다 더 적게 차이가 날 이유는 뭔가요? 삼성전자가 제품 라인을 통합했다면 원가라도 줄었겠지만 케이스 디자인까지 다른 갤럭시S가 한 라인에서 뽑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대신 '단일한 메시지'로 시장을 현혹시킨 것이죠.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마케팅 전문가라는 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하루아침에 생산방식을 바꿀 수도 없고, 그동안 공들여 관리했던 유통망을 버릴 수도 없다면 마케팅으로 한 브랜드에 집중하자는 전략이었죠. 물론 갤럭시S가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큰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감수했고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반면 LG전자는 어설펐습니다. '옵티머스'를 브랜드로 삼겠다면서 겉보기에도 너무나 달라 보이는 '옵티머스Q'와 '옵티머스Z'를 만든 뒤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제품'이라고 마케팅을 했습니다. 인력이 반으로 나뉘면 전달 효과는 4분의 1로 감소합니다. 소비자는 혼란스러워졌죠. 옵티머스Q와 Z가 각각 어느 통신사에서 팔리는지 외우는 건 사회과부도에서 각국 수도 이름 외우기를 하는 것만큼 헷갈렸습니다. 제대로 팔아보겠다고 만들었다는 '옵티머스원'은 시장에 나올 때부터 '보급형 스마트폰'이라는 것만 강조합니다. 틈새를 노려보겠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랜드가 처음 나왔을 때 혼란을 안겼고, 두번째 나왔을 때엔 스스로 저가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옵티머스' 제품에 좋은 이미지가 부여되기란 쉽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설명하기도 애매합니다. 처음에는 Q와 Z로 알파벳으로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제품은 '원(1)'으로 숫자 이름이 붙더니 갑자기 '옵티머스 시크'와 '옵티머스 마하'가 뜬금없이 등장합니다. 또 CES에선 '옵티머스 블랙'(색상)을 내놓고는 최근에 '전략 제품'이라며 다시 '옵티머스 2X'(숫자)로 회귀합니다. LG전자는 과연 스스로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이름을 붙이는 원칙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안 되는 프로젝트'를 쉽게 포기할 수 있도록 여기에도, 저기에도 딱히 집중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면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제품을 파는 건 안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역량을 기획과 생산, 마케팅과 세일즈 단계 여기저기에서 각각 분산시키기 마련이니까요.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마케팅의 기본 원칙은 4P입니다. 제품(Product)과 판촉(Promotion), 유통(Place)과 가격(Price)이죠. 애플은 아이폰을 팔면서 이 가운데 제품 측면에서의 장점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었죠. 가격과 판촉은 그저 경쟁사보다 뒤떨어지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유통은 다소 불리했지만 애플에게는 애플스토어라는 독특한 소매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 접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약점을 일부 커버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애플보다는 다소 늦게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이미 탑클래스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은 제품 수준은 어느 정도 경쟁사 수준까지 맞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6개월 만에 갤럭시S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가격은 애플의 아이폰에 맞춰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대신 이들은 판촉과 유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합니다. 갤럭시S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면서 제품발표회를 유명가수가 월드 투어 콘서트라도 하듯이 번갈아 열었고, 미국 시장에 갤럭시S(실제로는 달라도 동일한 제품이라고 판촉한)를 4개 메이저 통신사에 동시 발매하는 전략도 세웁니다. 모두 애플은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었던 일이죠. 남이 정말 잘하는 건 그냥 구색만 맞춰주면 됩니다. 그런 부분에 들어갈 노력은 과감히 포기해야죠. 다른 사람의 장점과 정면승부하는 것보다는 나의 장점에 집중하는 게 낫습니다.
LG전자는 어쨌던가요. 제품은 이미 한참 늦었습니다. 갤럭시S의 성공을 그저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했죠. 그래도 제품을 잘 만들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프리미엄 제품부터 보급형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쏟아냅니다. 판촉을 제대로 벌이자니 제품군도 너무 많아 무엇을 밀어야할지 고민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냥 모든 제품을 다 판촉하기로 마음을 먹죠. 옵티머스 시리즈의 이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옵티머스원이란 제품을 저가로 만들어 최대한 많은 통신사에서 판매하기로 했는데, 다른 제품들보다 월등히 값이 싸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야 이런 전략도 나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폰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제품이 아닙니다. 프리미엄 제품에서야 경쟁할 수 없다고 쳐도, 대만의 HTC는 물론, 화웨이와 ZTE같은 중국 업체들까지 엄청나게 값싼 안드로이드폰을 들고 세계 시장을 휘젓습니다. 국내에서도 이 시장에서는 팬택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지요. 그래서 LG전자는 가격으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없는 게 뻔함에도 이 시장에서도 경쟁합니다. 유통채널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요. 새로 취임한 CEO께서 "휴대전화는 B2B 사업이라 힘들다, 경쟁사 제품이 이미 들어간 상황에서 그걸 우리가 밀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LG전자는 힘든 상태입니다. 쩝.
과연 이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전략들을 폐기하고 역량을 한 부분에 집중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애플로 돌아간 스티브 잡스가 수많은 매킨토시 컴퓨터 라인을 폐지하고, 비효율적으로 개발되던 맥OS를 뜯어고치자 수많은 애플의 소비자와 파트너 업체들은 스티브 잡스에게 경악하고 반대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 아무 것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행동해서 회사에서 쫓겨났던 잡스가 이번에는 회사를 완전히 망칠 거라고 생각했죠. 잡스가 만들려던 건 애플을 위기에 빠뜨리고 잡스가 쫓겨났던 그 원인이 된 1984년의 매킨토시 컴퓨터처럼 '디자인이 아름답고, UI도 아름다운' 컴퓨터였거든요.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격렬한 반대 앞에서도 자기 식대로 회사를 뜯어 고칠 수 있던 건 회사가 파산 직전이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죠. LG전자도 지금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들의 움직임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요. 그들의 움직임이 그저 창업자 어록을 액자에 넣어 전 세계 LG전자 사업장으로 배송하고, 신입사원들을 '독하게' 몰아치는 것 이외의 '뭔가'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