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뮤즈에서 도시락까지. 한국의 판도라는 어떻게 주저 앉았나.

by

6년 전, 우연히 '뮤직시티'라는 회사를 알게 됐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의 '뮤즈'(Muz)라는 온라인 음악사이트를 운영하는 작은 디지털 음악업체였지만 그 때 이 회사가 보여준 모습은 그저 작은 기업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판 냅스터'로 떠들썩했던 소리바다와는 달리 애초부터 합법적이고 음악 저작권자에게 친화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었고, 다른 음악 사이트에는 없는 음악들(따라서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음악들)도 최대한 많이 DB로 쌓아두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름 음악산업이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것이죠. 직접 밴드 활동을 하고 음반을 낸 사람들이 초기 멤버에 포함돼 있었던 것도 독특했습니다. 확실히 이들은 달랐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5년 3월 이 회사가 도레미미디어를 인수한 일이었죠. 아무리 음반사가 형편이 어렵다해도 디지털 음악회사가 전통 있는 음반사를 사들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건 마치 요즘의 판도라나 라라 같은 회사가 게펜이나 소니뮤직을 사들이는 느낌이니까요. 이 회사의 꿈은 판도라와 비슷했습니다. '우연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죠. 비즈니스 모델로 구상돼 판매되기 시작한 첫 모델은 매장음악 판매였습니다. 뮤잭(Muzack)과 같은 서비스를 인터넷판으로 구성했던 것인데, 간단히 말하면 그날의 날씨와 매장의 주력 판매제품, 고객들의 연령대와 음악이 재생되는 시간 정보 등을 분석해 그 때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는 서비스입니다. 스타벅스에서 레이 찰스의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봄눈이 내렸던 어제(24일) 저녁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면 박지윤의 '봄눈' 같은 노래를 틀어준다거나(벚꽃이긴 하지만) 하는 식입니다. 물론 사람이 택하는 건 아닙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위치정보와 선호곡 등을 파악한 뒤 이를 알고리듬으로 만들어 적당한 노래를 골라 들려주는 셈입니다. 당시 이 회사의 목표는 고객이 늘어나 이 알고리듬이 정교해지면 단순히 매장 배경음악이 아니라 사용자의 MP3 플레이어 플레이리스트에도 이런 식의 추천 음악을 넣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고객 프로파일, 실시간 날씨 정보 등을 결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꿈은 사라져 갑니다. 시장이 너무 작았으니까요. 이들은 음악을 팔고 싶었지만 시장은 계속해서 극단적으로 변해갑니다. 이른바 '팔리는 음악'은 기획사가 찍어낸 거기서 거기같은 10대 소년소녀들이 휩쓸게 됩니다. 게다가 변한 시장 환경에 맞춰 저작권을 가진 음반업체와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권하고 싶은데도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뮤즈는 도레미미디어라는 음반사도 갖고 있고, 회사의 주요 경영진이 밴드를 하면서 음반도 냈던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였지만 소비자를 귀찮게 만들었던 'DRM'을 가장 먼저 MP3 파일에서 제거했던 건 이런 합법적인 서비스 업체가 아닌 저작권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던 소리바다와 벅스였습니다. 기술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음악가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로 무시했고, 음악을 하던 사람들은 기술자를 도둑놈 취급했습니다. 뮤즈는 이 사이의 접점이 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쪽 모두에서 박쥐 취급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또 한 번 통신사에 의해 정리됩니다. SK텔레콤이 당시 수익성 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서울음반을 2005년 인수하면서 멜론 등 음악사업을 크게 확장하게 된 것이죠. 그 결과 한 때 아이튠즈 다음으로 '세계 2위의 디지털 음악판매 시장'이었던 싸이월드도, '한국의 냅스터'라던 소리바다도, 벅스와 뮤즈도 모두 이 공룡 앞에서 꼼짝못하게 됩니다. 이후 한국 음악 산업은 사실상 SK텔레콤이 이끌어가게 됩니다. 로엔엔터테인먼트라는 SK텔레콤의 자회사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한국 음악계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손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군소업체의 선택은 단순합니다. 합종연횡이죠. 2008년 뮤즈를 운영하던 블루코드가 KT에 인수됩니다. 그리고 뮤즈도 도시락에 통합되죠.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얼마 전 버릇처럼 도시락 사이트에서 노래를 내려받다가 '재다운로드 유효기간은 1년'이라는 안내를 봤기 때문입니다. 뮤즈에서 한 번 돈을 내고 산 음악은 다시 내려받는데 유효기간이 없었습니다. 아이튠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구입한 음악은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백업을 받아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이 정책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웠죠. 왜 그런지 물어봤습니다. 답은 "도시락과 합병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도시락에서는 모든 음악의 재다운로드 유효기간이 1년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뮤즈의 정책을 통째로 바꿨다는 겁니다. 음악에 재다운로드 유효기간을 설정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 도시락이 팔던 휴대전화 벨소리 모델에 유효기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소비자가 벨소리를 바꿀 생각을 하게 될테니까요. 어느덧 음악 회사의 DNA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통신사의 DNA가 자리를 잡게 된 셈입니다.

대상 고객도 달라졌습니다. 뮤즈는 과거에 음악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공개앨범'이라거나, 재생 목록을 분석해 곡을 추천해주는 추천 서비스 등은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기능이었죠. 하지만 도시락과의 합병 이후 관련 기능의 업그레이드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합병 뒤 벌써 3년째인데 아직도 기술적 진보는 커녕 도시락과 뮤즈 두 사이트의 통합도 완벽하지 않아 보입니다. 당연히 '우연의 음악' 같은 한가한 소리는 사라졌고, 실시간 차트를 기반으로 싱글 음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지상 과제가 됐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 회사의 고객 가운데 엄청난 마이너리티라고 합니다. 생존이 힘든 산업에서 버텨나가야 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씁쓸합니다. 한 때 제가 사랑했던 회사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디지털 음악 시장은 더 이상의 혁신 없이 제자리를 맴돕니다. 이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요.

update:

좋은 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도시락을 운영하는 KT뮤직에서 이 글을 보신 뒤 앞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과거 뮤즈 시절과 마찬가지로 서비스 정책을 바꾸겠다는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한 곡 당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한 노래에 대해서는 재다운로드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죠. 또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게 변하기 시작했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서비스가 나오게 될 테니 기대해 달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몇 분께서 "아이튠즈에서 산 노래는 다시 다운로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지적이 옳습니다. 제가 "여러 대의 기기에서 얼마든 재생 가능하며 5대까지의 인가된 컴퓨터에 복사 가능하고, 인가된 컴퓨터 5대는 계속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을 대충 기억한 채 글을 쓰다가 착각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사실 제가 헷갈렸던 애플의 한 번 구매한 곡에 대한 정책은 지금 협상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뮤즈의 방식처럼 무제한으로 여러 차례 다운로드 가능한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클라우드 방식의 음악서비스를 위해서는 어차피 저작권자와 유통업자 사이에서는 이런 식의 딜이 필요해 보입니다.

돌 맞을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국내의 음악 가격도 좀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가장 비싸게 살 수 있는 노래 한 곡"의 가격이 600원입니다. 대략 3분의 1이 음악가에게 돌아가는데, 200원에 불과합니다. 4인조 밴드라면 1곡 팔아 50원 받습니다. 10만 번 다운로드가 되는 '대박 싱글'이라면 500만 원 벌겠죠. 참 암담합니다. 그분들이 음악하기 싫다고 할까봐 걱정입니다.

update2:

애플 관련 새 루머가 나왔네요. '모바일 음악 사물함'이라 불리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기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모바일미(Mobile Me)를 연 20달러에 제공하면서 아이튠즈 구입 음악을 백업하게 해주는 셈이죠. 제한없이 몇 차례고 다운로드 받는 게 가능해지는 것인데, 기존의 음반사와 재협상 루머와 결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