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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프리 일주일(iFree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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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밤이었습니다. 아내는 요리책을 보며 다음날 아이가먹을 식사를 고민하는 중이었고, 저는 아이패드를 보면서 밀린 뉴스와 블로그 포스트를 읽어내려가고 있었죠. 그러다 아내가 한 마디를 했습니다. 앞으로 등장하는 <1>, <2>, <3> 등의 숫자가 붙은 글들은 제 트위터 계정에 올렸던 그날그날의 트윗입니다.

    <1> 23일 금요일 오후 10시 8분. 아내가 말했다. "자기,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산 이후로 내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는 것 같아. 내 얘기를 건성으로 흘려듣고는 기억을 못해. 그대신 하루종일 그 기계를 손에서 못 떼고 뭔가 읽고 있어."

마침 여름휴가가 끝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일주일 동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서로에게 더 익숙해지고,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정보를 나눴어야 했을텐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는 반성이 뒤늦게야 들었습니다. 속으로는 약간 스스로에게 실험같은 걸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죠. 주위 사람들은 저를 보며 '아이폰을 잘 활용한다'고 했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기계에 더 의존적이고, 중독돼 있다는 얘기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 기계들이 사라지면 어떨까, 몹시 불편하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좋은 점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2> 23일 22시15분. 아내의 핸드폰과 내 아이폰에서 각각 SIM카드를 꺼내 바꿔 끼우다. 다시 아이폰을 돌려달라고 할 때까지는 아이패드도 손대지 않기로 결심. 이젠 트위터도, 메일 확인도 모두 컴퓨터로 할 생각이다.

그래서 바꿨습니다. 사실 "당신도 한 번 써보면 중독될 걸"이라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아이폰을 들려주면 저를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던 거죠.

    <3> 23시48분. 잠을 자야하는데 자기 전에 할 일이 없다. 불안해서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아, 오늘 인터뷰 녹음파일을 백업받아놔야지. 핑계를 대고 '마지막 동기화'를 위해 아이폰을 다시 한 번 손에 쥔다.

시작부터 그다지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뭔가를 읽던 버릇이 사라졌습니다. 머리맡에 두고 책을 읽는데 쓰던 탁상용 스탠드는 전기 콘센트에 마지막으로 꽂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해 11월 말에 아이폰을 사고 난 뒤로는 한번도 스탠드를 써본 적이 없던 모양입니다.

    <4> 24일. 돌잔치 초대를 받아 가는데 실시간 교통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다. 트위터도 하루 종일 못 봤다. 구글리더에 쌓여 있을 글들이 걱정된다. 그러다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책꽂이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아, 종이책이 정말 재미있다.

다음날, 돌잔치에 갔습니다. 토요일 낮이라 길이 막힐 것 같아 실시간 교통정보를 보려는데, 아이폰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SIM카드는 데이터요금제에 가입돼 있지 않았습니다. 제 카드를 바꿔 끼우면 굳이 이런 고생을 시작했을 필요가 없는 셈이라 그냥 꾹 참고 동부간선도로에 올라탑니다. 하루종일 트위터라는 건 잊고 삽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 시간이 남자 책꽂이를 보게 됩니다.

오늘 새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캐나다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후안 로드리게스라는 사람의 스스로에 대한 실험 얘기입니다. 이 사람은 저보다 더합니다. 이사를 하면서 집에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야 일주일 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 없는 생활을 했을 뿐이지만 이 사람은 무려 5개월 동안 '인터넷 없는 삶'을 삽니다. 물론 저도 약간은 스스로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줬고, 로드리게스도 하루 두어시간 인터넷카페에 가서 e메일과 뉴스, 일정 등을 살피고 일을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5> 25일. 두달을 읽고 있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순식간에 모두 읽었다. 트위터에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한 마음은 여전하다. 아이패드에 쌓이는 e메일은 슬쩍슬쩍 읽는다. 아예 손에서 떼어야 하는데, '니코틴 패치'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로드리게스는 비슷한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아파트에서 인터넷을 없애고 나자 나는 책(블로그가 아니라)을 읽는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사춘기 때 이후로 이런 느낌을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책을 손에 들고 그 속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나는 모든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인간 스폰지가 된 느낌이었다. 나 홀로 내 방에서 침대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나는 마치 인생의 의미라도 탐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열여섯살 때 그 느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느낌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6> 26일 출근길. 책을 들고 나왔다. 전철에서 책을 읽은 게 이게 얼마만인지. 보도자료도 출근해서 봐야하고, 조간신문도 출근해서 봐야하지만, 난 책을 읽고 있다. 난 책을 읽고 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깜박 잊어버리고(실시간이 아니었으니) 못 올렸지만, 25일 밤, 먼지 쌓였던 탁상용 스탠드를 다시 전기 콘센트에 꽂고는 자기 전에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였습니다.

    <7> 26일 점심식사.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갤럭시S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한마디도 할 수 없다. 그들만의 스마트폰 이야기. 아몰레드와 레티나디스플레이, 아이폰4와 갤럭시S... 나는 그냥 조그만 하얀폰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다만 저는 직업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일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쪽 분야 종사자들이거나 이 분야 담당 기자들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피하고자 해도 화제와 주제는 늘 이 분야에 집중됩니다. 이런 동네에서 작은 하얀폰을 들고 다니는 건 뒤떨어지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집에는 사실 아이폰이 있는데..."라고 말하기는 멋적으니 말이죠.

    <8> 26일 오후. 한 가지 좋은 점은 카페 같은 데서 맥북을 쓰면서 아이폰을 꺼내놓고 '컬트브랜드의 탄생: 아이팟'같은 책을 읽고 있으면 이게 무슨 정신나간 애플 팬보이가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스스로 자꾸 위안을 하게 됩니다. 이런 기계 없이 잘 살 수 있다, 없어도 다 사는 법이 있다, 더 좋은 게 분명히 있다. 이런 건 정말 자기 위안이었죠.

    <9> 트레드밀을 켰다. 걸으면서 아이패드를 보는 건 봐주자는 룰을 급조했다. 이렇게라도 봐야겠다 애쓰는 스스로를 보며 그 때 생각이 난다. 담배를 끊기로 해놓고 '공부할 때만 한 대, 맥주 한 잔에 한 대' 등의 예외규정을 만들던 시절.

그래서 예외규정을 스스로 만듭니다. 걷고 있는 동안에는 아이패드를 봐도 된다는. 로드리게스의 '하루 인터넷 카페 2시간' 룰을 보면서 몹시 공감이 갔습니다. 그쪽은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활용이었지만, 저는 그냥 자기위안 내지는 '니코틴패치'였죠.

    <10> 반성. 출근길 지하철에서 아내의 핸드폰으로 WAP 무선인터넷 웹서핑을 하다. 느리고, 좁고, 불편한데도 버릇은 무섭다. 시간만 더 걸리고, 책은 못 읽고. 아예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을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기로 결심.

그러다보니 주위에선 '금연기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들렸습니다. 확실히 인터넷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자체도 중독적입니다. 쓰다가 사라지면 어떻게든 대체제를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꼭 필요한 게 아닌데도 그게 버릇이기 때문이었죠.

    <11> @Choi_YJ 선배가 점심식사시간 엘리베이터에서 "아이폰 해킹이 불법 아니라는 판결은 좀 의문"이란 얘길 하셨다. 난 무슨 얘기인지 몰랐다. 트위터의 실시간 타임라인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몇 시간 뒤쳐지는 느낌,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다른 장점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난다는 건 상쾌하고 후련한 일이었습니다. 몇 시간 단위의 빠른 속보에 신경을 일단 끊고 나니(끊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보니)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했던 강박적인 확인 습관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뒤쳐진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직업 자체가 그리 오래 소식에서 뒤쳐지게 놓아두질 않는 직업이라 오히려 몇 시간 정도 여유롭게 흐름이 끊기지 않고 할 일을 하게 되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제 이런 느낌이 저만의 것은 아니리란 생각도 듭니다. 로드리게스의 글에 보면 니콜라스 카의 '섈로우'에 나온 통계를 재인용한 부분이 나옵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받은편지함'을 열어보는 횟수는 한시간 당(하루가 아니라) 30~40회입니다. 이들은 웹페이지를 하나 열 때마다 읽는 시간으로는 평균 10초 이하를 쓸 뿐이고, 2분을 넘게 읽는 페이지는 10페이지 가운데 한 페이지도 안 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미국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한 달에 거의 400건 가까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이 수치는 10대만 평균을 낼 경우 한 달에 2272건으로 다섯배 이상 치솟습니다. 또 학자들조차 온라인에서 논문이나 책을 읽을 때 한 페이지 또는 기껏해야 두 페이지를 읽은 뒤 다른 웹사이트로 '튕겨나간다'는군요.

    <12> 아이폰이 없으니 낯선 장소에 취재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골목을 돌고 돌아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가다. 포스퀘어나 윙버스보다 훌륭한 '입소문'. 이건 마치 보물찾기를 해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는 느낌.

또 다른 장점은 오프라인에서 더 많은 작은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예전에는 낯선 곳에서 맛있는 커피라도 마시고 싶으면 아이폰의 구글맵을 열고 '스타벅스'나 '커피빈'을 지도에 입력했습니다. 없으면, 당연하게도, 그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이날은 분당의 NHN에 갔던 날인데, NHN 정자동 사옥 인근에는 스타벅스도 커피빈도 없었습니다. 대신 물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커피와 사람들'이라는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작은 커피숍이 건너편 상가 구석에 있더군요. 커피맛은 정말 좋았습니다.

    <13> 음악은 귀에 최종적으로 와닿는 출력장치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느낌이 크게 변한다. 매일 아이폰으로만 음악을 듣다 모처럼 맥북 스피커로 벨앤세바스찬을 들으니 약간 찰랑이는 음색이 더 정겹고 차분. 아이폰을 없애니 감각이 열배쯤 선명해진 느낌.

기존의 경험을 바꾸는 것도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늘 듣던 이어폰, 늘 쓰던 기계를 벗어나면 같은 음악도 느낌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달라지는 경험들에 신경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아이폰을 손에서 놓고나서 생긴 장점이기도 했습니다.

    <14> 낯선 곳으로 취재를 떠났다. 셋이 갔는데 나만 아이폰이 없었다. 한 사람은 운전, 다른 사람은 옆에서 내비게이션의 빙 돌아가는 안내를 교정하느라 네이버 지도를 켜고 실시간 길 안내. 나는 그냥 뒤에 편히 앉아 쉬었다.

물론 약간은 게을러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15> 잘 시간. 아내가 사겠다는 새 탁자는 '럭셔리블루'라는 색의 삼각 둥근모서리가 있는 제품. 아들은 오늘 욕조를 약간 큰 것으로 바꾸다. 낮에 아내가 트레드밀을 뛴 흔적도 발견. 집안의 디테일이 내 눈에 들어오다. 내 잘못들의 재발견.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새 탁자를 사기로 했는데, 그 탁자가 무엇이었는지 한 번 얘기를 들은 것 만으로도 제품명과 가격, 특징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욕조를 평소 쓰던 것보다 약간 큰 걸로 바꾼 것도, 운동기구 주변의 배치가 약간 달라진 것도, 빠짐없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집에서 집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는데 모든 사소한 곳에 다 신경을 쓰게 된 것이었죠. 예전에 담배를 끊었을 때 음식들의 맛이 총천연색으로 느껴지면서 모든 음식이 맛있어졌던 것, 처음으로 종류가 다른 커피의 향이 구별돼 맡아지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감각이 살아났던 것이죠. 그것도 가까운 주위에 대한 모든 감각이.

    <16> 아이폰을 안 들고 다니니 만나는 분들마다 자기 스마트폰을 보여주신다. 대부분 회사에서 받은 갤럭시S다.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장에 불을 당겼지만 정작 관심없던 이에게도 스마트폰을 보급시킨 건 갤럭시S다. 제품 경쟁력이든, 마케팅 경쟁력이든간에.

주변 사람들의 스마트폰 생활에도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냥 '작은 하얀폰'을 들고 다니다보니 주위 분들이 자기 스마트폰 자랑을 늘어놓으셨거든요. 참 신기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갤럭시S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 분들 대부분은 평소 스마트폰 같은 건 자기와 관계없는 제품이라고 여기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갤럭시S를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판매하자 다같이 사게 됐고, 서로 스마트폰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스마트폰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기계라는 걸 알게 됐다는 얘기였죠. 외국에선 아이폰이 했던 일이라는데, 한국에선 아이폰은 얼리어답터 또는 얼리매스(early mass)의 제품이 됐고, 정말 제대로 스마트폰 보급에 불을 당긴 건 갤럭시S가 되어가는 모양새입니다. 한국 시장은 역시 독특합니다.

    <17> 아내는 내 아이폰에 네이버에 저장해놓은 전화번호부를 바로 내려받아 문제없이 쓰는데 나는 아내의 애니콜에 아무런 주소도 저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다 받고 있는데 하필이면 바쁜 때마다 텔레마케터의 전화다.

이런 건 기본적으로 제조사와 통신사의 문제입니다. USIM에 전화번호를 이용하라뇨. 구글 주소록과 캘린더는 공개된 표준 형식을 사용하는데, 이것조차 쉽게 가져오기(import) 할 수 없다면 사용성이 엉망인 겁니다. 도대체 사용자의 사용성이라는 걸 일부러 망치려 들려는 게 아니라면 도저히 제품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어요.

 
    <18> 아내가 아이폰을 쓴지 5일이 지났다. 본인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루종일 아이와 지내느라 쓸 일이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스스로도 변화를 모르는 모양이다. 아내는 이제 자기 전에 꼭 침대에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다 잔다.

아내가 저를 이해해주길 바랬는데 쉽게 이해하진 않더군요. 그래도 아내도 좀 변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마저 저와 비슷하네요.

    <19>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매달리던 때는 하루종일 '마이너 업데이트'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기분이다. 지금은 마이너 업데이트에 매달리지는 않는데 과연 메이저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  

    <20> 마이너업데이트에만 매달리는 것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당장 buzz가 되는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정작 중요한 것도 일시적인 buzz로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깨달은 건 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휴가지에서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보면 긴 호흡 같은 건 생겨나기 어렵다는 것이었죠.

    <21> LG전자 새 스마트폰 '옵티머스Z' 리뷰용폰을 후배가 입수. 스마트폰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나는 당장 "나도 좀 써보면 안될까?" 손을 뻗침. 다행히 후배가 집에 두고 왔다고. 일주일도 못 참을 뻔 했음. 내일밤이면 드디어 일주일.

이 덕분에 일주일은 채웠습니다. 장점을 알면서도 유혹이 눈 앞에 있을 때 중독을 끊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22> 30일, KT와 SKT가 동시에 보도자료를 냈다. SIM카드만 바꿔끼면 타사 단말기도 바로 쓸 수 있다고. 그랬는데 바꿔 끼니 안 된다. 검색해보니 안 된다는 사람들이 꽤 된다. 무조건 되는 듯 보도자료를 낸 KT와 SKT에 실망했다.

일주일이 됐습니다. '옵티머스Z'도 받았습니다. 마침 이날따라 KT와 SKT가 동시에 보도자료도 냅니다. USIM 이동이 가능해져서 타사 전화기도 쓸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국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알고보니 SIM카드만 바꿔끼우면 되도록 제한을 푼 게 아니라, 타사 단말을 고객리스트에 등록해 울타리의 범위만 넓힌 셈이었습니다. 판매 이전의 시제품 단말 번호를 타사에 등록시킬 수는 없던 것이고, 간단히 말하면 결국 또 이 통신사들은 '반쪽짜리' 실행으로 생색을 냈던 셈입니다. 덕분에 iFree는 하루 연장됐습니다.

 

    <23> 일주일을 스마트폰 없이 지낸 나는 메일 확인에 반나절이 걸리거나, 트위터로 화제가 된 내용을 하루 뒤에야 알게 되거나, 장소를 못 찾고 헤매는 일이 잦았다. 책도 많이 봤고, 아이와 더 놀아주긴 했지만 그건 직장을 잃고도 가능한 일 아닐까.

    <24> 다시 내 아이폰을 찾아오다. 당장 누워서 밀린 트윗과 RSS피드부터 살피는 내 모습에 경악. 게임중독과 스마트폰 중독의 차이는 커피와 알콜의 차이같다. 둘다 중독적이지만 커피는 각성을 돕는 반면 알콜은 억제로 만족을 유발한다.

    <25> 스마트폰은 업무와 일상을 각성시켜 효율을 돕지만 게임은 일상으로부터 별개의 삶을 만들어 만족을 준다. 우리는 술을 주의해 마실 줄은 알지만 커피를 주의해마실 줄은 모른다. 아이폰이 게임보다 덜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제, 토요일이 돼서야 제 아이폰을 찾았습니다. 로드리게스는 계속해서 인터넷이 없는 삶을 살아갈 예정이라고 하지만 전 아이폰과 아이패드 없이 사는 삶을 살기가 좀 두렵습니다. 그 느낌은 딱 '커피없는 삶'의 느낌입니다. 우리는 커피와 술이 모두 중독적이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위장에 미치는 해악도 모두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술은 그 해악이 조금 더 크기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커피는 해악이 조금 적기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도 비슷해 보입니다. 중독적이지만 그 중독의 결과가 게임보다 덜 선정적이고,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키고, 사람들과 단절시키며, 기억하는 능력과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지장을 줍니다. 커피가 우리의 위벽을 손상시키듯, 스마트폰도 우리의 정신을 손상시키지만 우리는 그 부분에는 사실상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