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HN과 아날로그 기록
by 김상훈
오늘(27일) NHN이 고 김수남 사진작가의 유작 16만 점을 디지타이징해 포털 네이버를 통해 인터넷으로 검색가능한 콘텐츠로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김 작가는 '한국의 굿', '아시아의 하늘과 땅' 등 한국과 아시아의 무속신앙과 소수민족의 생활풍습 등을 사진으로 담아온 비슷한 분야에서는 국내에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입니다. 오늘 NHN이 발표한 이 사업은 제게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가지씩 천천히 적어보겠습니다.
사라지는게 아쉬운 역사
아버지는 2006년 태국에서 취재를 위한 출장 도중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손을 써볼 길도 없었습니다. 급히 구한 비행기표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국 대기를 하던 그 순간에 전화로 부음을 듣던 순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리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작업은 급작스레 끝이 났고, 유작만 남았습니다. 16만 장에 이르는 슬라이드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 그리고 인화지였습니다. 도대체 이걸 들고 뭘 할 수 있을지는 아버지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 사진들은 남았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 그것도 왕실이나 귀족들의 문화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기층문화에 대한 사진이었습니다.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근대화와 서구화, 도시화에 목을 매거나 여전히 목을 매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정부는 이런 걸 타파해야 할 미신이라고 불렀고, 후진적인 사회의 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진짜 원형의 문화이며, 한국인과 아시아 각국 사람들의 정서를 구성하는 참된 뿌리라고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변했고, 조금씩 사회가 바뀌어가면서 그 가치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군가에겐 이런 사진이 필요합니다. 태국의 인류학자가 자신들의 산악 지방에 한 때 거주했던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을 연구할 때, 아름다운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문화가 반군 활동 때문에 세계로 알려지지 못할 때, 캄보디아와 라오스 베트남 등을 잇는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골든 트라이앵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삶을 보고 싶을 때 이런 사진들은 충실한 문화적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말이죠. 지금까지 이 사진들은 아버지가 생전에 일하시던 작업실 한 켠에 그냥 놓여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도움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출판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는데 큰 돈 벌리기보다는 제작 단가만 높을 게 뻔한 사진집을 출판하는 곳이 있을 리 없었죠. 돈도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대신 열어주겠다고 나서는 곳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인터넷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글이 '구글 아트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던 시점입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 모두가 쉽게 이용하게 만들겠다는 구글의 비전도 제가 잘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도 검색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고, 이런 사라져가는 기록을 가장 잘 보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필름은 습기와 온도변화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처음 제작 당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터넷에 이 사진들이 올라간다면 세계 누구라도 쉽게 이 사진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자는 연구에 활용할 수 있고, 지역의 매력을 홍보하는 관광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선대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이어지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디지타이징 과정
처음에는 구글과 NHN 두 회사에 이 필름을 디지타이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 드는 비용만 부담하면 저작권을 가진 유족으로서 사용권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죠. 아시아에서 점점 존재감을 높이려하는 구글 입장에서 아시아인을 위한 기록을 만드는 작업은 구글로서도 좋은 제안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접근가능한 형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 회사니까요. 하지만 구글에서는 사진은 디지타이징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전례도 없는데다, 당분간 시도할 계획이 없다고 하더군요.
기회는 NHN에서 왔습니다. 동일한 제안을 했는데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는 본부장이 이미 이 사진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2007년에 있었던 유작 전시회에도 직접 찾아갔던 적이 있다는 겁니다. 작가와 사진을 과거부터 알았고, 관심도 갖고 있는데다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쌓아나가는게 NHN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결국 NHN과 함께 스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NHN은 현재 기술로 필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스캔 작업을 시작했고, 비용보다는 스캔되는 콘텐츠를 최고 품질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디지타이징 작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사진은 있는데 사진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단순히 슬라이드북에 묶어놓고 촬영 장소와 연도 정도를 메모해 놓은 게 전부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고 있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소와 시간이라는 정보가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정보를 추가로 쌓아갈 예정입니다. 필름의 보관 상태가 균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검수하면서 스캔 작업을 진행합니다. 공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열심히 진행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꼭 필요한 분들에게 이 사진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사진들이 대중적으로 인기있을 사진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매우 가치있고, 꼭 필요한 사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장점은 이렇게 너무 작은 규모의 필요가 생겼을 때 그 발견과 전달에 들었던 막대한 비용을 최소화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이 사진에 사람들이 연결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