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리가르히
by Ki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면서 마지막 남긴 몇 문장 가운데 '올리가르히'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러시아의 재벌이고, 조금 복잡하게 설명하면 푸틴과 협력해 기존의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사업체를 인수하게 된 신흥 러시아 기업인들을 일컫는다. 당연히 제일 중요한 특징은 정경유착.
이 올리가르히가 미국에 태어나고 있다는 경고였다. 직접 대통령이 될 수는 없어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있다며 2500만 달러를 쏟아부어 대선 캠페인에 뛰어든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워터게이트 보도 이후 뉴욕타임즈와 더불어 미국 언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뒤, 트럼프 선거에서 '선거 중립'을 지키라며 처음으로 지지 후보 발표를 막고 나섰던 제프 베조스도 만만찮다. 워싱턴포스트는 베조스 인수 전에는 늘 지지 후보를 밝혀 왔다.
트럼프에게 제일 먼저 달려간 기업인 행렬에는 마크 저커버그도 있었다. 처음에는 방어적 행동처럼 보였다. 과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트럼프 계정이 정지된다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콘텐츠나 각종 음모론 콘텐츠가 삭제된 것을 사과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었다.
알고보니 핵심은 반독점 소송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때 임명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리나 칸이 메타의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인수가 경쟁을 막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불법이었다며 반독점 소송을 건 것이다. 저커버그는 이 소송을 막기 위해 FTC에 4억5천만 달러에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고, 칸은 "불법 독점을 계속 유지하도록 합의하자는 제안은 말이 안 된다"며 일축했다. 대통령 주변에 가장 돈이 많은 부자들이 모이고, 이들이 정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올리가르히와 다를 게 없어진다.
어쨌든 저커버그는 합의금을 10억 달러로 올렸지만, FTC는 여전히 날을 세운 상태다. 벌금 300억 달러 얘기가 나오고 있고, 저커버그는 증인석에서 4시간 동안 증언해야 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저커버그가 트럼프에게 달려갔던 것인데 예상 밖으로 트럼프의 참모들은 저커버그에 동조하지 않았다. 트럼프와 참모들 사이의 회의에서 트럼프는 재판 전 합의가 이뤄지도록 도와주면 물어보는 입장이었는데도, 참모들은 그냥 FTC 소송을 이어가 재판에서 결론이 나도록 하자는 조언을 했다.
관측은 이렇다. 우선 트럼프 측도 저커버그가 완전히 전향한 게 맞는지 의심하고 있다. 머스크와도 늘 갈라설 수 있다는 긴장이 있는 상황에서, 머스크처럼 온몸으로 뛴 것도 아닌 저커버그를 믿기 어렵다. 무엇보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을 가진 소셜미디어 거물이다. 워싱턴포스트 사주 정도인 제프 베조스는 영향력이 비교도 되지 않는다. 선거판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소셜미디어가 단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는 상황은 트럼프 역시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