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prototype

by

”시제품을 만들지 않은지 2년 정도 됐습니다. 왜 그랬느냐면, 첫 날부터 제조 공정을 시작했거든요. 시제품을 만든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실제 생산라인에서는 그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와 같은 소리에요. 그러니까 시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자원이나 그 과정에서 얻는 지식 등은 실제 생산에 들어갈 땐 다 버려버리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안 됩니다. 시제품을 만들 때 테스트해보게 되는 기술,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 같은 건 모두 한 번 해보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에요. 이걸 버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러니까 제조의 첫 날을 테스트의 첫 날이라고 생각하면, 낭비가 줄어들어요.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연구개발팀과 제조팀이 정말로 친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팀이에요. 어렵고 힘든 과정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모두가 속도를 얘기하지만, 정말로 속도를 내는 회사는 별로 없다. 모두가 실패가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실패를 존중하는 문화도 별로 없다. 실패를 하면서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문화는 더더욱 힘들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다. 해보면서 실패하고, 실패하면서 바로 고쳐서 다시 해보는 것. 그러자면 연구실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 지식을 생산팀이 배워서 대량생산에 적용하는 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연구자가 생산자여야 하고, 생산자가 연구자여야 한다.

나는 그런 조직을 안다. 토요타 얘기다. 토요타 생산라인의 숙련공은 최첨단 6기통 엔진을 설계하는 내연기관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자신이 조립해야 하는 차종의 생산 라인 설계 과정의 맨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신경쓰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실제로 작은 개선이라도 만들어내고 만다. 토요타에서 생산자는 곧 연구자다.

하지만 위의 얘기는 토요타 키이치로의 얘기도, 오노 다이이치의 얘기도 아니다. 넥스트 시절 스티브 잡스의 얘기다. 넥스트는 손쉽게 ‘망한 회사’처럼 취급되는 억울함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아이폰과 맥,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등이 넥스트 덕분이다. 무엇보다 넥스트는 연구자가 곧 생산자인 공장이었다.

그렇다고 애플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지 않았을까. 넥스트는 프로토타입이 없었을까. 천만에. 늘 어디 한 구석에 비밀 중의 비밀이라며 쌓여 있던 그 시제품들의 존재를 증언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시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결코 시제품에 만족하지 않고 대량생산을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대였을 것이다.

애플을 굉장히 창의적인 회사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창의성이 '자유로움'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언제나, 제약이 창의성을 만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멋진 소설들을 쓰기 위해 날마다 1시간을 조깅하고,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며,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루틴과 제약이 창의성의 원천이다. 애플이라고 다를까. 매년 정해진 시기에 하드웨어 신제품을 발표하며, 정해진 시기에 소프트웨어 신제품을 선보인다. 매년 같은 기간,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들은 1년에 한 번 씩 내놓는 신제품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시제품을 먼저 선보여 놓고 뽐내지도 않는다. 매년 같은 기간 대량생산되는 신제품이 나오고, 버그가 수정된다.

프로토타입이란 그런 것이다. '프로토타입'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변명 뒤에 숨게 된다. 인생에 시제품이란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양산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