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인시떼
by 김상훈
라인이 일본에서 1위라는 소리야 한참 전부터 들었다. NHN에서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안티 네이버' 정서가 강한 주위 분들과 라인 얘기를 할 때면 늘 부정적인 얘기를 듣곤 했다. "TV 광고 엄청나게 한다던데, 돈으로 마케팅해서 점유율 산 거지 뭐." "일본에서 1위라곤 해도, 그게 뭐 얼마 되기는 한 거야?", "진짜로 일본 사람들이 라인 좋아하는 거 맞아?", "카카오톡 베낀 거잖아. 한국에서 다른 서비스 다 베끼듯." 직접 가서 보고 들은 건 좀 달랐다. 한국에서야 NHN이 공룡이고, 독과점업체이고, 무소불위의 1등이지만, 일본에선 사실 존재감 없는 작은 업체였다. 게다가 손 대는 사업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다. 게임은 언어 장벽이 없으니 통할 거라면서 일본에 건너갔지만 사실은 언어장벽보다 더한 문화장벽이 있는 게 게임 사업이었다. 한게임재팬은 정말 수없이 문 닫을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일본에도 검색이 통할 거라며 네이버재팬을 만들었지만 역시 별 반응이 없었고, 소셜미디어의 시대라며 인수했던 라이브도어도 그저 그랬다.
NHN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테고, 나도 그랬다. 전혀 몰랐다. 이런 실패들이 켜켜이 쌓이면 성공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사에도 썼지만 라인이 성공한 건 역설적으로 계속 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누가 뭐래도 '믹시'였다. 일본 밖에선 누구도 몰랐지만 일본 안에선 모두가 믹시를 썼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믹시가 잘 쌓아놓은 일본 문화라는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日製가 아닌 Made in USA 아이폰이 휴대전화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역시 미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사용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믹시는 트위터와 경쟁하기보다는 그냥 1위를 지키는데 급급했다. 일본에선 한국처럼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급격하지도 않았고, 일본 소비자들은 한국 소비자처럼 유행을 따라 쏠려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NHN재팬이 움직였다. 물론 계기는 카카오톡이었다. 전화가 모두 불통이 됐는데, 한국에서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문제없이 전송됐다. 인터넷이야 원래 불통되지 않도록 병렬로 연결되는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설계됐으니 통신사가 모든 연결을 중계해줘야 하는 이동통신망보다 훨씬 위기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서비스가 일본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라인이 특별한 건 그 다음부터다.
3월 대지진을 겪고, 6월에 라인 서비스가 시작됐다.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서비스 시작 때부터 일본어와 동시에 영어 서비스가 열렸다. 직원들 덕분이었다. NHN재팬의 개발자 가운데에는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멕시코인 등이 함께 일한다. 한두 명이 아니고 200명이다. 전체 직원의 20%가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인으로 좋은 직원을 채우고 싶지만 한국계 작은 회사가 일본에서 좋은 인재를 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개발자를 뽑았다. 일본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기업이라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같은 게 없다면서 이들에게 어필했다. 한국 기업문화를 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겠지만, 멕시코인이 한국 기업 문화까지 생각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어쨌든 NHN재팬은 약속했던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방적인 지시도, 쓸데없는 허례허식도 줄어들었다.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인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외국인 직원들도 꼬리를 물고 입사지원서를 냈다. 다양성은 계속 늘어났고, 기업문화도 이런 다양성을 계속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나갔다. 다른 일본 기업들보다 못했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었다. '다른 기업'이 '다른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기업문화가 수평적이라고 인기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제약이 라인을 성공시켰다. Mobile First였다. 카카오톡을 잘 벤치마킹했던 라인은 이 앱을 처음부터 모바일 용으로 만들었다. PC 서비스도 하고 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모바일 앱은 기본적으로 PC 앱 개발과 개념이 다르다. 화면이 작고,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정보량이 극히 제한적이라 가장 중요한 게 사용자환경(UI)이다. 쉬워야 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다시 그리고, 다시 만들고, 디자이너에게 사실상 전권이 쥐어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발자 우선 문화의 카카오와도 달랐던 부분이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라인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관점에서 모든 서비스를 만들었고, 개발자는 디자인 팀의 완성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구현해야 했다. 신규 서비스에서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느냐는 건 완성품의 모양새를 상당히 다르게 만든다. 결국 모바일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 쉬운 사용법으로 연결됐고, 초기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라인을 궁금하게 여겼던 계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어려워서 쓰기 싫은데, 믹시는 모바일에서 별로고, 갈팡질팡하던 'SNS난민'이 라인으로 몰렸다는 이 일본 블로그 글이었다. 알면 알수록 이 얘기가 맞았다. 그리고 모바일이라는 근본적 제약에 스스로를 가둔 결정이 결과적으로 라인의 성공을 낳았다.
그렇다고 NHN재팬이 개발을 경시하는 회사도 아니다. 오히려 초기 시행착오는 카카오톡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썩 성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들 덕분이었다. 한게임재팬은 분산서버 관리 기술을 필연적으로 갖춰야 하는 온라인 게임회사다. 게다가 한국 출신 개발자들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동시접속자가 급증하는 메신저앱(신년 이벤트가 있을 때 등)의 관리에 필수 노하우다. 폭증하는 부하를 여러 곳으로 나눠주는 기술이다. 방향으로 따지면 일대다. 검색은 반대다. 검색어가 들어왔을 때 정보가 위치한 곳을 순간적으로 찾아내는 기술이 핵심이다. 제각각인 수많은 요청을 적소로 연결해 주는 기술이 핵심인데 방향으로 비유하자면 다대일. 그러니까 전화국 오퍼레이터의 역할 같은 것인데, 네이버재팬의 존재가 이런 기술을 회사 내에 보유하게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수많은 요청을(하루 10억 건이 넘는 문자대화를)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요했다. 라이브도어는 이런 데이터센터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회사다. 인터넷을 통해 다뤄지는 데이터의 규모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자체 하드웨어 역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고 있는 회사는 손으로 꼽는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도 데이터센터는 임대한다.) 게임과 검색, 블로그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모아놓고 라인을 할 때 써먹어보려고 하니 얘기가 달라졌다. 황금구조였던 셈이다.
NHN재팬은 계속 어려웠다. 라인도 아직까지는 딱히 큰 돈을 벌고 있는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일본의 히트상품 가운데 라인은 2위로 꼽혔다. 1위는 도쿄의 새로운 자부심이자 랜드마크인 스카이트리다.(도쿄타워보다 높은 동양 최고(最高)의 건축물이다.) 카카오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면 라인이라고 그러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게다가 카카오의 성공은 NHN의 한국 본사에 의해 속속들이 벤치마킹된다. '라인팝'이 '애니팡'의 짝퉁이라고는 하지만 베트남과 브라질의 라인 사용자에겐 애니팡이 전달되는 속도보다 라인팝이 전달되는 속도가 우선이다. 오히려 NHN이 우리가 그동안 중요한 한국의 역할이라고 자위해 왔던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 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서의 한국을 실질적으로 사업에 잘 써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해외에 재빨리 내놓아 시장을 만드는 일 말이다. 외국 기업에겐 그렇게 하라고 한국에 R&D센터를 지으라 권했으면서 한국 기업이 그렇게 해외에서 성공하는 걸 탓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지금 어려워도, 그 어려움이야말로 성공의 더 큰 발판이 될 수 있다. 라인의 성공 사례는 그 증명이다.
p.s. 신문에 나간 기사 링크를 클릭하셨다면 아시겠지만, 라인시떼(ラインして)는 "라인해"라는 뜻이다. "문자해"라고 말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