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wind I/O #2: 크롬, 그리고 클라우드
by 김상훈
크롬이 언제 나왔는지 아세요? 2008년 9월입니다. 일반인 대상의 소비자 버전이 나온 건 2008년 말이었죠. 불과 3년 반 전에 나온 이 웹브라우저는 5월에 세계 1위 브라우저가 됐습니다. 6월에도 이 추세는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크롬을 그냥 웹브라우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크롬은 구글이 갖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입니다. 조용히 격전지에 들여보내 판을 뒤집어버리죠. 첫 크롬 웹브라우저가 딱 그랬습니다. 구글이 새 브라우저를 만든다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두려워 했던 건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엄청나게 상승시켰던 파이어폭스였습니다. 크롬은 안중에도 없었죠. 시장에서도 구글이 딱히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웹브라우저인 줄로만 알았던 크롬은 알고 보니 OS였고, 알고 보니 구글 문서도구와 웹 애플리케이션이 돌아가는 새로운 컴퓨터 환경이었습니다. 크롬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서핑만 빨라졌던가요? 구글은 웹서핑 속도만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동안 크롬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함께 빨라졌지요. 구글 문서도구를 크롬이 아닌 다른 브라우저에서 써보세요. 크롬처럼 효율적으로 빠르게 실시간 협업을 할 수 없습니다. 크롬이 속도, 속도, 또 속도만 강조하는 웹브라우저인 게 당연합니다. 다른 웹브라우저는 그냥 웹페이지만 열어서 보여주면 됩니다. 빠른 속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죠. 하지만 크롬은 이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돌려야 합니다. 속도가 느리면 느린 OS가 되는 셈이니 속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만해도 구글 문서도구의 실시간 협업 기능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메인 브라우저는 크롬을 씁니다. 물론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크롬을 권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크롬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꺾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위협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윈도 OS마저 흔들지 모릅니다. 목마인 줄 알았는데 속에는 군대가 들어 있던 트로이의 목마처럼, 웹브라우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피스에 OS였던 게 크롬입니다.
이날 구글은 iOS용 구글 크롬을 선보였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죠. 애플 앱스토어에 가서 보세요. 리뷰 가운데 절대 다수가 극찬입니다. 사파리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가 쏟아집니다. 구글로서는 이번에 목마를 한 번 더 만들어서 애플의 성 안으로 들여보낸 모양새입니다.
물론 애플은 나사 빠진 듯 최근 몇년을 허송세월했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헐렁한 상대가 아닙니다. 크롬을 앱스토어에 올릴 때까지 구글은 애플과 정말 많은 물밑 협상을 벌였던 모양입니다. 민감한 질문들에 대해 순다 피차이 크롬부문 수석부사장은 "애플과의 NDA(비밀유지계약)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더군요. 실제로도 크롬은 구글 I/O 시작 전날(26일)에야 간신히 앱스토어 심사를 통과했고, 구글은 크롬을 가려놓았다가 28일 키노트를 마친 뒤에야 일반에 이를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크롬은 웹브라우저입니다. 현재의 iOS 정책에 따르면 웹브라우저에서 HTML5를 이용해 판매하는 웹애플리케이션이나 정기구독 모델은 애플이 별도의 수수료를 과금할 수 없죠. 구글로서는 iOS 기기 사용자들에게 애플의 간섭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첫 걸음을 내딛은 셈입니다.
물론 웹브라우저를 통한 서비스는 일반적인 스마트폰앱(네이티브앱이라고 하죠)과 비교하면 속도도 느리고, 접근성도 떨어집니다. 구글은 이런 문제를 클라우드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스마트폰 하나하나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서 해결해주겠다는 전략이죠. 클레이 베이버가 이날 시연했던 구글 드라이브를 보면 똑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을 구글이 만들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클레이는 생길 때마다 스캔해서 그냥 이미지 파일로 구글드라이브에 저장해 놓았던 영수증 스캔파일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스캔 이미지가 수백장은 넘을 것 같았는데, 클레이는 '우편발송'과 관련된 영수증을 찾는 걸 시연했습니다. 각각의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였습니다. 텍스트로 태그를 달아놓은 것도 아니고, 가진 정보라고는 파일을 생성한 날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우편발송 영수증을 후딱 찾아냈습니다. 구글 클라우드가 OCR(광학문자인식)을 통해 영수증 속 문자를 읽어낸 덕분이죠. 더 신기한 것도 보여줬습니다. 클레이는 여행 사진 폴더로 들어가서 '피라미드'를 검색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 여행 때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이 떡하니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물론 제목은 IMG_0000.jpg 같은 식의 단순한 파일명이었고, 어떤 텍스트 정보도 추가로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구글이 사진을 보고 피라미드 모양을 식별해 알려준 겁니다. 2년 전 구글이 선보였던 '구글 고글'(Google Goggles)이 기억나시는지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사진 속 이미지가 뭔지 검색해주는 기능 말입니다. 그게 구글 드라이브와 이런 식으로 연결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런 일을 해내는 엄청난 기계 자원을 구글이 그냥 놀게 놔둘 리가 없습니다. 구글은 이날 그래서 'Google Compute Engine'이라는 새로운 클라우드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아마존도 EC2라는 비슷한 서비스를 갖고 있는데, 연산 능력을 갖춘 클라우드 컴퓨터를 다른 회사에 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구글은 유전자 연구나 항암치료제 개발 등의 업무에 사용하면 엄청난 양의 계산을 기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마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더군요.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기업들이 빌려 쓸 수 있는 컴퓨터의 수는 코어 갯수로 따졌을 때 77만1889개에 이릅니다. 이걸 필요에 따라 나눠쓰는 것이죠. 각각의 코어가 갖고 있는 램은 3.75GB. 제 컴퓨터는 듀얼코어(코어 2개)에 8GB램을 쓰니까 지금 계산대로라면 구글은 제 컴퓨터 39만 대 정도를 연결한 컴퓨터를 외부에 빌려주겠다는 발표를 한 셈입니다.(물론 이건 서버입니다. 제 개인용 컴퓨터와는 수준이 다르죠.) 게다가 이 숫자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니 앞으로 계속 늘어날 예정이고요.
익스트림테크라는 곳에서는 이걸 두고 재미있는 분석을 하나 했습니다. 구글이 빌려주기로 한 클라우드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따져보면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슈퍼컴퓨터 가운데 3위 정도 된다는 겁니다.(77만 개의 코어 전체를 쓰는 게 아니라, 이날 예로 들었던 유전자분석에 사용됐던 60만 개 코어 기준으로) 그러니까, 누구라도 구글에 돈만 내면 세계 3위의 슈퍼컴퓨터를 빌려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슈퍼컴퓨터를 빌려쓰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8코어, 30GB 램을 갖춘 가상머신 하나의 임대 가격이 시간 당 1.16달러입니다. 60만 개 코어의 컴퓨터를 빌린다면 7만5000대의 8코어 서버를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1시간 당 8만7000달러, 하루에는 약 200만 달러를 쓰는 꼴이네요. 하지만 익스트림테크는 엄청난 돈처럼 보여도 설치비만 수천만 달러가 들고 매년 수백만 달러의 운영비를 잡아먹는 슈퍼컴퓨터를 직접 사들이는 것과 비교하면 이렇게 빌려쓰는 슈퍼컴퓨터가 훨씬 싸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1년에 이런 컴퓨팅 파워가 며칠 정도만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말이죠.
얼마 전 구글의 CFO 패트릭 피쳇이 구글은 지금 직접 쓰기 위해 제조하는 서버의 규모만으로도 세계 최대 하드웨어 메이커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죠. 과장이 아닙니다. 구글이 설비투자에 쓰는 돈은 지난해만 34억 달러에 이릅니다. 약 4조 원 가까운 돈입니다. NHN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6000억 원 정도 되니까 번 돈을 전부 설비투자에만 쓴다고 해도 6년을 투자해야 겨우 구글의 1년치 설비투자를 따라잡을 수 있겠군요. 이 정도면 어마어마하다 못해 두려운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