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스타트업
by 김상훈

가치가설과 성장가설
처음 기업을 시작했을 때 부딪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하고 있다는 근거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지표를 측정하게 된다. 돈을 번다거나, 사용자가 늘고 있다거나, 입소문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린스타트업은 이 첫 질문부터 다르다. 질문을 딱 두 가지로 한정한다. 과연 이 제품은 사용자에게 가치를 주는가? 그리고 이 제품은 앞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나?
가치가설의 증명은 간단하다. 이 제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의 제품 대신 이 제품을 사용하느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자메시지 대신 카카오톡을 쓰느냐를 만족시킨다면 가치가 있다. 카카오톡도 존재하는데 조인을 쓰느냐는 질문에서 조인을 쓰지 않는다면 이 제품은 가치가 없다.
성장가설의 대답은 말 그대로 성장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의 성장지표는 매일 사용자들이 주고받는 메시지의 건수다. 다운로드 수가 아니라. 지난달에는 100만 명이 다운로드했는데 이번달에는 50만 명만 다운로드했다고 슬퍼할 게 아니라, 지난달 메시지 발송 건수는 하루 10만 건인데 이번 달은 1000만 건 전송으로 늘어났다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지표가 성장해야 서비스가 성장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디어
아이디어는 제발 잊어라.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훔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대기업은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 제안에 파묻혀있게 마련이고, 이 가운데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 거기에 사업화를 할만큼 자원을 투자할까 우선순위를 정하기만도 바쁘다. 심지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싸들고 가서 베껴달라고 부탁해도 베껴주는 대기업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리란 얘기다. 게다가 베끼고 싶다고 실무자가 생각해도 대기업에선 베끼기 전에 첩첩이 쌓인 결제 라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위에서 경영진이 베끼라고 시킬지는 몰라도 그건 아주 소수의 경우고, 그 나머지의 수많은 빈틈에 스타트업의 기회가 있어서 수많은 기업들이 오늘도 창업하는 것이란 얘기.
대기업의 중소기업 아이디어 베끼기 등이 사회 문제로 늘 지적받지만, 솔직히 세상에 완전한 오리지널은 없다. 한국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도 카카오톡과 라인에서 쓰는 메신저 이모티콘을 베껴다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이런 이모티콘은 MSN메신저 시절에도 존재했다. 애초에 아이디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더 빠르게 실행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비효율
"회사는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사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전통적인 경영학으로 훈련된 경영자들은 여기에서 당연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 회사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있거나, 일을 잘못하고 있거나,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이 부분을 보면서는 정말 많은 사례 생각이 났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내가 참고했던 프로젝트, 내가 취재했던 프로젝트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건 B사의 기획서를 참고용으로 받았을 때였다. 정말 구체적이었다. 사용자가 클릭을 했을 때 어떤 애니메이션이 작동해서 0.1초 단위로 어떻게 사용자에게 반응이 주어지는지를 마이크로하게 모두 기술한 기획서였다. 개발은 그냥 시키는대로만 만들면 될 정도로. 그 기획자가 최고의 기획자로 칭송받아서 연말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건 물론인데, 문제는 그 서비스가 결국 망해버렸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열심히 일했고, 일을 잘못하지 않기 위해 기획서는 담당 임원까지 검토했으며,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개발과 디자인 기획은 각각 따로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결과를 보고 사용자 피드백을 받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었다. 과연 무엇이 비효율이었을까. 불성실한 기획서, 감으로 이뤄지는 개발, 뭔가 틀이 덜 잡힌 디자인 등이 비효율이었나? 아니면 소중한 피드백의 시간을 임원 검토로 흘려보낸 몇 개월이 비효율이었나.
고객군 전환
MVP(최소요건제품)는 그 자체로 만능이 아니다. 얼리어답터로부터 빠른 반응을 얻어내고 집중할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만드는 Minimum Viable Product는 결과적으로 주류 고객에게 대단한 양을 판매하기 위해 거쳐가는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결국 주류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을 전환해야 사업이 성공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주류 고객을 다시 알아야 한다. 얼마전 만난 눔의 정세주 대표는 "MVP가 늘 옳은 건 아니다"라며 린스타트업을 너무 믿지 말라고 경고하셨는데, 사실 그 얘기가 고객군 전환에서 린스타트업이 하는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린스타트업에서는 "명확한 고객 원형을 개발하라"고 제안한다. 직접 대화와 관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눔에서는 이걸 "전문가와 대화하라"(Meet the Experts)고 설명한다. 세상의 수많은 얼리어답터는 얼리어답터일 따름이고, 실제 소비자는 얼리어답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눔은 '눔 다이어트 코치'라는 앱을 파는데, 당연히 사용자에게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눔다코는 얼리어답터를 관찰했다. 운동량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보계 기능을 넣었고, 섭취한 칼로리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도록 쉬운 음식 입력 방법도 만들었다. 그런데 점점 다양한 요구가 늘어났다. 음식의 재료까지 직접 입력하고 싶다는 고객이 나타났고, 만보계 이외의 운동량도 함께 관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애초에 눔다코가 가진 목표의식과는 달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눔은 전문가를 만났다. 식품영양학 박사들 얘기가 아니다.(물론 포함되긴 한다.) 피트니스센터의 트레이너, 학교의 급식사, 유명 요리사, 운동선수, 체육교사, 건강관련 책의 저자, 패션 잡지 기자 등등이 바로 전문가다. 다이어트와 건강에 관해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이 눔다코에게 고객 원형을 개발해 줬다. 정 대표는 "고객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됐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로 제품을 전환하면서 음식 재료 배달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도요타
기본적으로 린스타트업은 제조업의 방식이다. 그것도 자동차 공장의 방식. 스타트업이라고 아이디어 중심의 지식기반 기업이라 특별할 거라 생각하는 게 바로 착각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부분은 도요타와의 비교였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조금씩 낭비 요소를 줄여가면서 생산과정을 개선시키는 도요타의 카이젠(改善) 방식은 린스타트업에선 MVP로 표현된다. 최소요건 제품을 만들어 문제를 조금씩 개선시키는 방식이다. 현장 작업자가 문제를 발견하면 비상줄(안돈코드)을 잡아당겨 생산라인 전체를 멈춰버리는 도요타 방식도 마찬가지로 MVP와 스플릿테스트의 반복에서 겹쳐서 보인다. 도요타의 안돈 코드는 결국 손해를 무심코 넘겼을 때 나중에 더 큰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생산라인 전체가 멈춰서도, 잘못된 생산을 하는 것보단 낫다는 얘기다. MVP를 만들어 계속 수정하고, 스플릿테스트를 위해 제품을 두벌씩 만드는 비효율도, 잘못된 길로 갔다가 돌아오는 것보다는 비용효율적이란 식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은 수많은 경영학자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던 20세기 최고의 생산방식이었다. 그리고 도요타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세계에 공개했다. 이런 노하우는 비밀로 감춰야 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도요타 사람들은 모두 같은 답을 내놓는다. "안다고 다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린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방법이지만, 모든 기업이 안다고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성공 확률은 확실히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