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리틀 브라더

by

145648131002_20160227

필리버스터 당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이 책을 소개했다. 그러자 저자가 이 장면을 보고선 "한국에서 내 책을 소개했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 기묘한 세상.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소개했을까, 그리고 이 저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한국의 필리버스터에도 관심을 갖고 있을까(물론 독자가 트윗으로 알려줬겠지만)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 그리고 책을 덮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폭탄이 터져 베이교가 무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정확히는 '국토안보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온갖 비상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애국자법2'도 등장했다. 9.11 테러 때 등장했다가 부분 위헌 판결로 무력화된 '애국자법'을 비꼰 패러디다. 문제는 국토안보부가 테러리스트는 못잡고, 무고한 시민들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위기는 권력자에게 기회니까. 주인공 마커스는 고등학생이다. 폭탄이 터지던 그날 우연히 국토안보부에 붙잡혀 감옥에 갇혔고, 잘못된 사람을 잡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국토안보부는 구금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마커스를 풀어준다. 하지만 함께 구금된 마커스의 친구는 풀려나지 못한다. 그래서 마커스는 평소 즐기던 방식대로 정부에 저항한다. 인터넷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찰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가상의 미국 정부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이게 정말 묘하게 낯이 익은 구석이 있다. 우선 마커스가 학교에서 쓰는 노트북부터.

"스쿨북에는 윈도우 비스타4스쿨이 깔려 있는데, 이 구닥다리 운영체제는 학교 관리자들에게 학생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강제로 깔아주겠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던데...

마커스는 아주 똑똑한 고등학생이다. 도서관 책에 달린 RFID태그가 책을 빌린 학생의 위치추적에 편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는 전자렌지에 책을 넣고 돌려 RFID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두루마리 휴지심에 자전거 조명에서 떼어낸 LED램프를 잔뜩 박아넣어 소형 몰래카메라 렌즈를 찾아내기도 한다.(렌즈 유리의 빛 반사를 통해) 또 엑스박스 해킹(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이는데, 엑스박스에 리눅스를 설치한 뒤 와이파이 릴레이 방식(이건 FON을 연상시킨다)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부가 추적할 수 없는 거대한 통신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특히 마커스의 친구들은 수많은 공개 암호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마커스는 이런 말을 한다.

"튜링이 에니그마를 발명한 사람보다 똑똑했다는 게 문제였다. 암호화 체계를 만들고 나면 만든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그 체계를 깨버릴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수록, 설령 만든 사람조차 깨는 방법을 모르는 보안 체계를 만들어내더라도 누군가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무슨 일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암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알려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체계를 두드려보고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결점을 찾아내지 못할수록 암호 체계는 안전한 것이 된다. 오늘날 암호 체계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암호가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지난주에 어떤 천재가 만든 암호화 방식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깨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식을 이용하는 게 낫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특정 암호가, "정부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국가기관에서는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안전하지 못한 스마트폰으로 이 스마트폰을 꼽았다고. 왜냐하면 정부가 다 들여다 보고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해서. 그런데, 이 스마트폰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보안이 잘 돼 테러 방지에 지장이 있다고 FBI를 열받게 했다더라. 문제는 최근에 보안적합성을 통과하지 못한 스마트폰은 별 문제가 없는데, 적합성을 통과했을 스마트폰들이 북한 사이버테러에 뚫렸다는...

끝으로, 저자는 한국어판 번역과 함께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저자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저자의 책이 한국 국회에서 소개됐으니, 저자로서도 즐거운 경험이었을 듯.

"외설과 저작권 해적질을 막기 위해, 혹은 “최근 북한의 지뢰 폭발과 연천 포격 등 도발과 관련해 남한이 거짓으로 날조했다고 비난하는 허위의 내용이 담겨 있는”(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차단한다며 검열 체계를 만들면, 권력자는 숨기고 싶어 하는 자료를 이런 분류에 넣기만 해도 네트워크에서 쉽게 없애버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