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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두 갈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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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애매한 데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마스터제도' 얘깁니다. 10월부터 시작한 제도인데, 승진 경로를 두 갈래로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관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관리자로 승진해 임원도 하고, 사장도 해서 크게 보상을 받아보고, 그게 싫고 연구를 열심히 하는 게 더 좋다면 전문가 코스를 밟아서 승진 대신 '마스터'가 된 뒤 전문가로서 대접받으라는 겁니다.

 

해외 기업들도 이런 투 트랙(Two Tracks) 인사전략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방식을 거칠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짧고 굵게 살거냐, 가늘고 길게 살거냐.

 

예전의 미국 기업들은 투트랙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마케팅 전문가, 인사전문가, R&D전문가, 생산관리 전문가... 이런 전문가들이 결국 자기 분야의 임원이 되고, 그것이 회사의 전문성을 높여준다 생각했지요.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생겼냐면, 누구도 회사를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각 임원들은 자신의 일만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재무담당임원이 올해 시장 상황을 보아하니 R&D 비용을 통제해야겠는데, 그러면 R&D임원이 난리가 납니다. 성과를 못내니 자기 고과도 나빠질 게 뻔하거든요. 그러면 R&D임원이 마케팅임원을 꼬드깁니다. 새 제품을 만들면 수요가 늘어난다고 얘기해달라고요. 마케팅임원은 재무임원을 보아하니 광고비도 줄일 것 같고, 매출도 역성장시킬 것 같죠. 그러면 둘이 짜고 R&D 효과를 부풀릴 인센티브가 생깁니다. 그러다 성공하면 이들은 내년 연봉이 오릅니다. 실패하면? 다른 회사로 가면 됩니다. 어차피 이들은 전문가니까요.

 

이렇게 미국 기업들이 방만하게 살고 있을 때 일본 기업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합니다. 전문가를 없앤 거죠. 연구개발 하겠다고 입사한 엔지니어를 첫 3년 연구실에서 일하게 한 뒤 "영업을 알아야 소비자 마음을 안다"며 방글라데시 지사로 보내버립니다. 방글라데시에서 3년 구르고 났더니 인사팀으로 발령냅니다. 이제 회사를 좀 알았으니 다시 연구개발을 하려는데 마케팅 팀장을 시킵니다. 그러고 또 5년 구르고 나면 재무담당 부장으로 보내버립니다. 갈 때마다 비효율이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느라 다들 죽어납니다. 아랫사람, 윗사람 다를 게 없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일본은 당시에 종신고용을 하던 나라였으니까요. 어차피 이 회사에서 죽도록 일할 테니, 여러 업무를 배우며 구르는 게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렇게 10년, 20년 지나자 미국 기업들이 따라잡히기 시작합니다. 협상테이블에 앉았는데, 미국쪽 영업임원은 영어를 잘 합니다. 일본쪽 영업임원은 더듬거리며 자신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부품값이 얼마인지, 시장 경쟁 상황은 어떤지, 미국 내 정치상황은 어떻고 상대 기업의 사내정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본 애들은 알고 미국 애들은 모릅니다. 영어만 잘한다고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일즈의 기본은 상대를 아는 건데, 미국 애들은 자기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투트랙입니다. 전문가의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우리도 일본처럼 상대를 알아야 한다는 미국 기업의 자기 반성이었던 거죠. 그리고 미국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여러 곳을 돌면서 기업을 알아라, 조직을 관리하고, 팀의 효율을 높이고, 너 스스로가 아닌 기업 전체를 살려라, 그러면 보상은 끝내주게 해주겠다. 그렇게 관리자를 만들어 갑니다. 회사들이 MBA에 간부들을 대거 보내고,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MBA를 마치는 사람들도 이런 분위기 덕분에 크게 늘어납니다. 한편으로 전문가들은 그냥 전문가가 됩니다. 평생 사장이 되는 건 포기합니다. 고위 임원들처럼 끝내주는 보상은 택도 없고, 그냥 좀 괜찮은 월급쟁이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임원은 툭하면 내쳐집니다. 그 자리는 정글이거든요. 전문가의 자리는 아늑합니다. 회사가 문닫기 전에는 내치는 일이 거의 없고, 혹시 회사가 문을 닫아도 다른 곳에 갈 수 있을만큼 자기 계발이 가능하니까요.

 

관리자란 건 그런 겁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성공한 관리자인 것이죠. 훌륭해서 살아남았고, 훌륭해서 대접받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살아남았으니까 훌륭하고, 살아남았으니까 대접받는 겁니다. 그렇게 나쁜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치열하게 하다보면, 그리고 기업의 모든 중간관리자가 고위관리자가 되기 위해 세력을 만들고, 줄을 서며, 라인끼리 경쟁하다보면, 기업 전체적으로는 결국 발전하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살아남은 고위관리자들은 자기 세력을 지키고 자신이 좀 더 성공하기 위해서 조직 파괴적인 행동은 못하게 됩니다. 회사 전체를 위한 대의명분에 늘 신경을 쓰게 마련이죠.

 

궁금한 건 왜 삼성전자가 올해 들어 이런 투 트랙을 쓰느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을 몰랐을 것도 아닐텐데요. 이런 생각은 듭니다. 기업이 커리어패스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저히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렸을 때입니다.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판판이 깨지던 미국 기업들의 경우가 이렇게 해석되지요. 둘째는 내부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기존의 커리어패스를 유지할 경우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또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을 내치거나 또는 구제해야 할 특정한 이유가 있을 때 이런 제도를 손을 대게 마련입니다.

 

삼성이 지금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직이었던가요? 아니면 과거의 미국기업처럼 전문성 때문에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충성도가 떨어졌던 조직이었던가요? 답은 그냥 비워두겠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