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이 최저가격 보상제의 속임수를 밝힙니다
by 김상훈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상품은 가격에 민감합니다. 하지만 특히 민감한 업종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유통업이죠. 신세계 이마트나 홈플러스같은 할인점은 날이면 날마다 '최저가' 경쟁을 벌입니다. 어떤 할인점에 가든 자기네 점포 가격이 가장 싸니까 최저가격을 보장하겠다고 큰소리도 펑펑 칩니다. 소비자는 이쯤에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 우리집 근처의 이 할인점이 인근에서 가장 싼 할인점이로구나. 그러니까 큰 소리를 치지. 아니면 내가 다른 데서 비싼 물건을 가져다 보여주면 될테니...
순진한 생각입니다. 할인점의 최저가격 보상제는 사실 전혀 다른 메카니즘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A라는 할인점이 최저가격 보상제를 실시합니다. A는 경쟁할인점인 B 할인점의 가격을 대충 살피고는 자신들의 가격을 거기에 맞췄습니다. 더 싸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똑같이만 하면 됩니다. 담합 아니냐고요? 두 할인점이 서로의 가격을 비교했을 뿐, 가격을 서로 상의하지만 않는다면 담합은 아닙니다. 그런데 B라는 할인점에서 새로 나온 상품을 100원 싸게 판다고 칩니다. 그러면 B의 경쟁력이 올라가겠죠? A가 최저가격 보상제를 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소비자가 100원 더 비싼 상품을 '신고'하는 거죠. A는 신고를 받자마자 해당 제품 가격을 내립니다. 자기들 직원을 경쟁업체에 보내 가격조사를 시키는 수고비보다 소비자의 힘을 이용하는 게 더 싸기 때문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100원 정도 차이는 눈감아 버리는 소비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신고하는 번거로움은 100원보다 더 큰 가치거든요. 하지만 이런 100원의 차이가 나는 물건을 1000개 파는 할인점은 10만 원을 버는 셈입니다. 게다가 A는 신고가 들어오는 순간까지 이 물건에서만큼은 B보다 상대적으로 100원의 이익을 더 보게 되는 겁니다. 최저가격을 신고한 소비자에게 A 할인점은 두배든, 세배든 아낌없이 보상해줍니다. 10배를 보상해줘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보상과 동시에 가격표를 고칠 테고, 그때까지 얻은 이익은 보상액보다 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바로 '누구도 지금 이 순간의 경쟁업체 가격을 알 수는 없다'는 전제이지요. 할인점과 할인점 사이에는 적어도 자동차로 10분 이상, 길게는 30분 이상이라는 '거리'가 놓여있습니다. 물품의 종류도 몹시 다양해서 똑같은 우유라도 A 할인점의 C,D,E라는 우유와 B 할인점의 F,G,H라는 우유는 품질은 대동소이한데 브랜드가 조금씩 다릅니다.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 아니라면 가격 비교도 유명무실해지는 셈입니다.
이 차이를 깨는 기술이 나왔습니다. 특별한 회사의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저 스마트폰과 소비자들이 이런 변화를 만든 겁니다.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 직후의 최대 쇼핑시즌, 이른바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에 벌어진 일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판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검은 금요일이 낀 주말 동안 휴대전화를 통한 가격비교 서비스 이용률이 지난해보다 무려 40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폭발적이죠. 이들이 뭘 했을까요? 바로 아이폰이나 블랙베리를 꺼내들고 구입하려는 상품의 바코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겁니다. 그러면 이 바코드가 인터넷으로 전송됩니다. 인터넷에는 다른 소비자들이 똑같은 바코드를 찍어 올려놓은 데이터가 무수히 많습니다. 사용자들은 바코드와 함께 어느 매장에서 얼마에 제품이 팔리고 있는지도 적어서 전송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용자들은 우리 동네 월마트의 우유 한 상자 가격이 옆 동네와 비교해 얼마가 차이나는지 알게 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많은 가게의 정보가 기록되고, 최저가격보상제의 혜택을 받는 소비자가 늘어납니다. 더 이상 거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신고에 재미를 들인 소비자에게 신고의 가치는 꽤 큽니다. 100원 차이를 신고할 때 느끼는 만족은 100원 이상이 되기 때문이죠. 이 와중에 업체가 서로 다른 가격을 수정한다고 해도, 아마도 지난해보다 몇 배 많은 많은 손님이 가격 차액 보상을 요구했을 겁니다. 아마도 더 많은 손님이 저렴한 다른 할인점으로 옮겨갔을 테고요. 결국 할인점의 보상금액은 끊임없이 늘어날테고, 제품 가격은 '하향평준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최저가격 보상제를 고수하는 할인점은 예전같은 이익은 커녕 이 제도로 큰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드디어 한국에도 아이폰이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선 이런 소프트웨어가 아이폰이나 블랙베리, 안드로이드 용으로 다양하게 나와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결국 원리는 간단하니까요. 훌륭한 개발자께서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이런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늘 5분 거리의 이마트냐, 10분 거리의 홈플러스냐, 어디에서 장을 보느냐로 고민하곤 했습니다. 저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 고민이 싹 해결되는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