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 천식 지도
by 김상훈
우리 아들은 소아천식 환자다. 소아천식은 아주 흔한 질병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도시에 살면 발병률이 높아지는 병이다. 일자리 때문에 서울에 사는 부모 탓 질병이란 소리다. 나이가 들면 대개 완치돼 건강하게 살지만 그전까지는 환절기마다 숨을 못 쉬어 괴로워하는 아이를 답답하게 지켜보게 만드는 아주 고약한 병이기도 하다. 물론 나이를 먹어도 완치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나이가 들어 천식이 생겨서 더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미뤄 짐작하셨듯 이 병의 가장 큰 특징은 발병 원인이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아들이 소아천식을 앓으면서 나는 의사에 대한 경외심을 완전히 버렸고, 존경심을 무한히 갖게 됐는데 그게 바로 천식의 특성 탓이었다. 경외심을 버린 건 의사의 역할이 결국 증상을 보고 마치 법관이 판례를 보듯 기존 지식에 따라 이 약 저 약을 투약해보면서 차도를 지켜보는 것 뿐이기 때문이었다. 뚜렷한 원인도, 획기적인 치료법도 없다. 이는 종합병원이든 동네 의원이든 마찬가지였는데, 의사라고 해서 100%의 로직을 갖고 1+1=2라는 식의 정답을 아는 상태로 환자를 보지는 못한다. 그런 로직이 통용되는 세계는 수학과 공학의 학문적 세계 정도일 것이다. 반면 존경심을 갖게 된 건 의사가 환자와 실질적으로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단골 환자의 병력을 차트 없이도 대충 아는데다, 차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식은 이들에게 결국 데이터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의사 말고 이런 식으로 환자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부모 외에는 없다.
그래서 기술은 절대로 의사를 대신하진 못하는데, 대신 의사의 진료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역할은 하게 됐다. 애스마폴리스(Asthmapolis, 천식도시)라는 미국의 한 스타트업은 천식 환자들이 발작을 피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호흡기치료기구에 GPS 장치를 달았다. 그리고는 환자들이 이 호흡기치료기를 작동시키는 순간 GPS도 함께 작동시켰다. 원리는 간단했다. GPS가 켜질 때마다 호흡기치료기는 이 장치가 작동한 위치와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를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 받아 열어보게 되면 언제 어디서 천식환자의 발작이 시작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 A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장 자주 천식 발작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곳 바로 옆에 빵가게가 있는데 매일 그 시간에 트럭이 주차돼 있다면? 자동차 매연을 의심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 담벼락이라면? 고양이 털 알러지가 의심된다. 심지어 이런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다면 비슷한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예방약을 미리 복용할 수도 있다. 여기에 약리학이나 의학이 개입하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온오프 스위치에 연동되는 GPS 센서가 기술의 전부다.
애스마폴리스에 따르면 4개월 임상실험에 참여한 40명의 참가자들은 이 기간 동안 예측 불가능했던 천식 증상의 발생률이 기존의 62%에서 25%로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기계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자신들의 데이터를(개인 건강정보니까 당연히)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원할 경우 애스마폴리스로 전송할 수 있다. 일종의 '소셜 천식지도'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의학계에서 반길만한 정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아들을 부모처럼 지켜봐 준 우리 동네 소아과 선생님은 지금보다 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역할을 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의사가 전지전능한 '명의'나 '신의'가 되는 것보다 건강한 삶의 방식과 긍정적 태도를 환자들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어울리고, 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스마트폰과 GPS 같은 간단한 기술이 그들의 새로운 직업적 성공을 이루는데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천식환자 또는 천식환자의 가족들에게 이 기계가 널리 보급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