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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IT 대한민국, 그 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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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말, '씁쓸한 IT 대한민국'이란 글을 이곳에 썼습니다. 당시 미국에다녀와서 든 생각을 쓴 얘기였는데, 그 뒤 1년 여가 지났습니다. 최근에 다시 미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교도 쉬웠던 것이 다행히 지난해 갔던 미국 동부에 또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은 정말 위기같아 보였습니다. 아이폰같은 건 들어오지도 않았고, 'IT강국'이라곤 하는데 도대체 우리가 뭘 잘하는지 저도 답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는 여전히 뛰어났고, 삼성전자도 여전히 잘 나갔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여전한 것들만 지키려는 나라에 발전이란 건 없게 마련이었죠.

미국 얘기부터 한 번 해보죠. 지난해 그 변화의 속도에 놀랐던 것 그대로,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미국의 시골은 이제 브로드밴드가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 미국인들은 초고속인터넷이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다른 인류로 바꿔놓는지 신기해 하며, 한편으로 이런 빠른 변화가 어떤 부작용이라도 불러오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보느라 분주합니다. '아이폰 열풍'은 곧 '스마트폰 열풍'으로 이어져 대부분의 공공시설과 서비스는 무선인터넷을 위한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하려면 "우리 레스토랑에 대한 평가를 보세요"라는 문구와 웹주소 또는 QR코드가 담긴 메뉴를 받게 되는 거죠. 전통적으로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추천메뉴'를 물어봐도 되지만, 이 가게에 다녀간 기존의 손님들이 남긴 추천메뉴도 볼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소셜메뉴'인 셈이죠. 이런 게 어느새 뉴욕에선 흔한 일이 됐습니다. 또 작년까지만 해도 유료였던 스타벅스 무선랜이 어느새 무료로 공개돼 어느 도시에 가서도 미국 통신서비스에 돈 한 푼 내지 않은 한국인마저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 인터넷을 즐기고 한국에 인터넷 전화를 거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됐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지 않아도 스타벅스 앞에서는 무선랜 신호가 잡히거든요.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건 한국의 변화의 속도입니다. 미국이 성큼성큼 앞서가는 사이에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지난 1년을 돌아보죠. 그동안 한국은 완전히 땅을 박차고 날개짓을 했습니다. 아이폰이 들어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도 수없이 늘어났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못 만든다고 몇 달 정도 욕을 먹더니 어느날 갑자기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내놓고 국내에서 단일기종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스마트폰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회사가 만든 갤럭시탭은 이제 '아이패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됩니다. 이 얘기를 한국 언론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PC월드씨넷(비록 정식 뉴스가 아닌 기자 블로그지만)같은 전통있는 잡지를 포함한 해외 언론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선랜 접속포인트(WiFi AP) 숫자는 1년 만에 미친듯이 늘어나 면적당 설치비율로는 이미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절대 설치대수로도 미국을 조만간 능가하리라는 예상입니다. 값비싼 3G 이동통신망을 통한 데이터통신도 어느새 미국보다 훨씬 싼 값에 무제한으로 풀려버렸죠. AT&T같은 회사는 오히려 무제한 데이터를 다시 거둬들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한때 조용하던 한국의 벤처기업들도 다시 들썩들썩합니다. 몇년 뒤쳐진 탓에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게임빌, 컴투스 같은 회사는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해외에서도 이름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도 많이 변해서 뉴욕 레스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바일을 이용하는 마케팅도 크게 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문사와 방송국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앞다퉈 내놓고 있고, 휴대전화로 영화표를 '살 수는 있지만 불편하고 더 비싸서' 안 사던 시절도 이제 끝났습니다. 오히려 궁금한 게 생기면 휴대전화로 바로바로 검색해보는 탓에 '디지털 치매'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정도가 됐죠. 사업성 없다고 투자를 더 안 한다던 와이브로는 엄청난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할 새로운 통신망으로 부각된 덕분에 다시 각광받고 있고, 이젠 더 이상 해외 수입 스마트폰의 기능을 통신사가 빼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건 많습니다. 한국 벤처들의 모임에 가보면서 우리 벤처들의 수준도 외국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느끼면서도 이번에 뉴욕에서 보고 기사로도 소개했던 뉴욕테크밋업과 같은 모임은 정말 부러웠습니다. 700석이 넘는 좌석이 행사 전에 미리 매진되는 그 뜨거운 분위기는 '시장의 규모'의 차이 때문이라고 넘기기엔 더 느낄 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으로 이 모임을 운영한다는 건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남들이 베껴갈까 봐 수익모델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생각을 하고 벤처를 만들면 오히려 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었죠. 제가 참여했던 모임에서도 누군가 "수익모델은 뭔가요?"라고 질문했더니 관객석에선 바로 "부(Boooo)~"하는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질문했던 사람이 당황해할까봐 사회자가 "이 행사에 처음 와서 그런 질문을 하셨으리라 생각하고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면 야유를 보내기로 약속한 바 있다"고 해명도 해주더군요.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뭐든지 다 갖춰놓고 일을 했던가요. 한국이 미국처럼 땅이 넓고, 자원도 많고, 세계 최고의 대학을 갖고 있으며, 군사력도 강하던가요. 그런 천혜가 없어도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꾸준히 발전해 온 게 이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열심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으며 일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죠. 지난 1년은 아직 더 갈 길이 남아있지만 몇 년 간의 격차를 순식간에 크게 줄여놓은 1년이었습니다. 지나고 돌아보니 한국은 그렇게 빠르게 살고 있었죠.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