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ing Compiler

트위터를 보며 다시 RAM과 ROM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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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초창기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에야 1200bps전화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던 그 시절의 전화 신호음이 낯선 분들이 대부분이시겠지만, 그 땐 그 나름대로 그 속에 사이버스페이스와 온라인커뮤니티가 활발했습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이른바 'RAM당(黨)'과 'ROM당'입니다.

RAM은 Random Access Memory의 약자이고, ROM은 Read Only Memory의 약자입니다. 둘 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기억용 메모리 반도체의 이름인데, RAM은 읽고 쓰고가 모두 가능한 메모리이며 ROM은 읽기만 가능한 메모리라는 뜻으로 사용됐죠. 엄밀하게 말하면 요즘같은 컴퓨터 환경에선 이런 분류가 그리 정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그저 그렇게 썼습니다. 그게 그 커뮤니티의 은어같은 것이었으니까요. RAM당은 말 그대로 열심히 대화에 참여하고, 게시물을 올리며 토론을 주도하고, 남의 글도 잘 읽어주는 사람들을 뜻했습니다. 반면 ROM당은 글은 하나도 올리지 않은채 남의 글만 열심히 읽는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였죠.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눈팅족' 정도 되려나요.

얼마 전 신문에 트위터에 관련된 칼럼을 하나 썼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집단지성과 개인을 이어주면서 사람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관계를 이어주는 건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가깝다는 인상을 주면서 각종 문제도 생기고 있으니,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제목은 단순무식하게 뽑혔지만...ㅠㅠ) 그 때 제가 트위터를 바라봤던 시각은 전형적인 ROM당의 시각이었습니다. 트위터는 제게 빠른 정보를 습득하는 통로였고, 취재를 돕는 도구였으며, 지식을 확장시키는 정보매체였습니다. 제가 거기에 뭘 올리고 나눠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거의 안 했죠. 간혹 이 거대한 사이버 커뮤니티를 돕기 위해 RT(Retweet)라는 소극적 행위를 하거나, 제 의견을 살짝 덧붙일 따름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진 건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트위터 편'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여담이지만 이런 건 SBS가 따로 SBS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올려줘야 한다 생각합니다.) 정말 다양한 활용이 존재하더군요. 이란의 이른바 트위터혁명이라거나 폭설 때 트위터 활용 등이야 흔히 거론되던 사례라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지영민 님(@sookmook)이 부르던 '거위의 꿈'이라거나, 평범한 대학원생 정수아 님(@5oa)이 트위터로 만난 분들이 아버님 장례식에 찾아온 얘기를 들려줄 땐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아 저 사람들에겐 트위터가 정보의 유통 채널이 아니구나, 그냥 삶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리니지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리니지 길드원끼리 서로의 관혼상제를 챙겨주는 관계 이후로 이런 강력한 사회망은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야 온라인게임에서 한 번 겪어봤으니 그렇다치지만, 처음으로 이런 관계를 경험한 해외에선 또 얼마나 놀랐겠어요. 트위터가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를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게다가 @chanjin님이나 @dogsul님 같은 이 커뮤니티의 유명인들이 얼마전 제 블로그 글을 RT하면서 제 방문자도 주말내내 늘어났습니다. 트위터 팔로워가 늘어날 때마다 메일이 배달되도록 설정해놨는데 갑자기 주말내내 제 스마트폰이 하루종일 삑삑대며(평소 주말에는 늘 조용한 녀석이) 메일을 토해내는 겁니다. 기사로는 써왔는데, 겪어본 적은 없었던 정보의 새로운 유통 방식이란 게 어떤 건지 몸으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아직도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야 크게 못 미치지만, 한 가지 놀라운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롱테일'이죠. 제가 쓰는 신문기사의 유효기간은 '하루'입니다. 단 하루. 만약 제가 중요하고 큰 기사를 썼다면 그 날 하루는 꽤 많은 사람들이 제 기사를 이야기하지만, 그 다음날이면 모두가 잊어버립니다. 저는 그게 그냥 이런 직업 종사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RT와 mention(트위터 용어입니다. 추천과 언급 정도라 할까요...), 그리고 하이퍼링크와 검색을 통한 이야기들은 길고 오래 남습니다. 실시간으로 화제를 모으고, 이를 웹 어딘가에 기록으로 링크시키며, 검색으로 반복해서 소비되는 상황은 한 번 쓴 글의 유효기간을 하루가 아니라 며칠 이상 연장시킵니다. 모르죠, 몇 주, 몇 달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전히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가 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꼭 필요한 필수 요소란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과 잠재적 위험을 강조하느라 간과하고 있었던 생명력과 활기참을 발견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트위터 친구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사려깊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느라 고생하셨던 SBS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