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니바퀴와 괴물
by 김상훈

잘 알고 있는데도 다시 확인하면 섬찟해지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Allegheny) 산맥 한구석에 새로운 케이블을 뚫어 시카고 사우스루프(South Loop)의 데이터 센터에서 비롯된 광자(photon)에 약간 더-엄밀히 말해 3밀리초-가깝도록 조치한 것은, 뉴저지주 카터릿(Carteret)의 나스닥 서버를 좀더 근거리에 두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대서양 횡단 케이블은 거래 시간을 0.006초 단축시켰는데, 이는 족히 3억 달러 넘는 투자가치를 지닌 개선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은 예전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무언가 먹을 것, 입을 것,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통신선을 만드는 일은 더이상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주고받기만을 위한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단지 돈 거래의 속도를 몇 나노초 높이기 위해 산을 뚫고, 해저를 연결하며, 사방으로 마이크로파를 쏘아댑니다.
금융시장이 기술과 인공지능에 의해 점점 더 크게 휘둘리는 경제에서 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 전문 투자자의 말마따나 "기계들이 스스로의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인간 주인들로부터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두려움은, 더이상 실물 경제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은행 시스템에 의해 얼마간 현실이 되었다."
어느새 천문학적인 돈이 인간의 판단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 오로지 기계들의 판단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디제털 경제의 시대죠. 저자는 새로운 시대를 전통적 방법론으로 해석하는 동료들을 안타까워 하고, 한편으로는 경제학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잘못된 비난을 아쉬워 합니다.
통신사의 수익을 가져온 다음, 그것을 데이터 볼륨(비트 단위)으로 나누어서 얻은 또 다른 가격지수는 같은 7년 동안 통신 서비스 가격이 90퍼센트 하락했음을 확인했다. 이 중 두 번째가 더 타당한 수치인 까닭은 모든 전기 통신이 기본적으로 비트의 물리적 단위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구성 서비스는 비트당 시장 가격이 저마다 다르지만, 이를 테면 소비자들이 비싼 SMS(문자메시지)에서 왓츠앱(WhasApp) 같은 여러 무료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로 갈아탐에 따라, 그 가격이 점차 수렴하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이 신중한 버전의 새로운 물가지수를 실험적으로 영국의 GDP 수치 계산에 사용했을 때, 우리는 몇 년 동안 성장률이 매년 0.16퍼센트 더 늘어나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는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를 합성해 최근의 연간 성장률 1~2퍼센트와 비교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는 그저 경제의 한 부문에서 한 가지 가격지수가 지니는 영향력일 뿐이다.
디지털 경제의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디지털 경제를 단순히 일자리를 뺏아가고 신기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두려운 존재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통 경제학자들이 집계해 오던 경제 통계 자체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디지털 경제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GDP 측정과 같은 전통적 통계에 제대로 반영된 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영향력을 생산해 내는 빅테크에 대한 비판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우버와 우버이츠의 관계를 과연 전통적인 경쟁 규제 당국이 잡아낼 수 있겠느냐는 얘기입니다. 우버는 일종의 택시 서비스고, 우버이츠는 식당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비스입니다. 서로 달라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플랫폼을 이용합니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알려주는 시스템이란 점에서 차이가 없죠. 저자는 이런 걸 '흡수전략'(envelopment)이라고 부르는데 엄연한 규제 대상인 '끼워팔기'(bundling)와 달리 이런 흡수 행위는 전통적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큰 플랫폼들이 진입할 수 있는 모든 시장에 닥치는대로 뛰어들 때 결과적으로 신생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밖에 없는데 기존의 경제학은 이런 변화에 무력하다는 얘기입니다.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시장을 얻기 위한 경쟁’에 대한 역동적 분석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분석은 향후 그 부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을 포함하는지라 경쟁 당국으로서는 시행하기가 어렵다. 더 나은 기술을 보유한 어느 기업이 디지털 거인들에게 도전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 그 기술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는 것 역시 두말 할 나위 없이 어렵다. 역사는 뒤늦게 판단해 볼 때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술 예측들로 어지럽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답하고자 노력해야 할 정책 과제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 뿐만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격렬한 논쟁을 만들고 있는 각종 규제들, 예를 들어 영국의 페이스북과 구글에 대한 광고시장 지배력 조사, 한국의 구글 인앱결제 규제, 유럽의 쿠키 규제(GDPR) 등 다양한 규제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긍정적입니다. 그 규제들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 입안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대신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공교롭게도 국내 시장의 규모 때문에 거대 디지털 기업은 하나같이 미국이나 중국의 것이다. 따라서 지정학도 연관이 된다. 이는 이 외국 기업들이 상대 영토에서 자유롭게 영업하도록 허락받을 수 있을지 여부, 또는 레이건과 대처 혁명이 국가의 경제행동주의(economic activism)를 사라지게 만든 것처럼 보인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유럽 각국이 자국의 디지털 챔피언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시종일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을 강조합니다. 번역판 부제가 "경제학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였는데 참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디지털 경제라는 거대 담론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좀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