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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은 결국 사람 사이의 연결" 팀 버너스리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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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팀 버너스리의 인터뷰를 쓰긴 했는데 사실 주고받은 대화를 다 소개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다. 시간도 1시간이 주어져서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사실 이번에 한국도 처음 왔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코멘트도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짖궂게 물어봤다. "한국 인터넷 관련 기업 중에 아는 회사가 있나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웹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 말입니다." 네이버 정도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는 "단 한 곳도 아는 곳이 없다"고 했다. "물론 하드웨어 회사들은 알죠. 삼성이나 LG 같은.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하드웨어 회사는 한국 회사라기보다는 글로벌 회사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잖아요. 생각해 보면 웹도 그래요.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해서 전세계를 연결하죠. UN이 국경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처럼 웹도 국경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웹에서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에요. 그런데 결국 국경 문제가 나오는군요."

- 그렇다고 웹에 국가간 차이가 없는 건 아니잖요? 중국 정부는 여전히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고, 해외 기업의 서비스도 제한합니다. 한국에선 독특한 우리식 사회주의...가 아니고 우리식 인터넷규제가 버젓이 살아있죠. 실제로 한국 관료들을 보면 "지나치게 서구 중심이고, 표준 논의에 아시아 국가들은 잘 끼워주지도 않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받곤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한국 사람들이 서구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철학이란 건 사용하는 언어, 국적, 성적 취향 등 어떤 것이든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개방적이게 마련이에요. 혹시 IRC(인터넷 채팅) 써보셨어요?이런 걸 쓸 땐 상대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국적도 보지 않죠. 닉네임만 쓰니까 전혀 상대를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인터넷이 미국 방위고등계획국이 연구하던 알파넷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미국이 창조에 많은 부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얘기에요. 그런데 전 유럽 출신입니다. 인터넷은 미국에서 만들었고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 인터넷이 연결될 표준이 없었어요. 그래서 WWW이 만들어졌죠. 유럽 사람이 만들고 유럽 연구소에서 시작된 게 미국과 연결된 겁니다."

- 중국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인터넷은 미국이 만든 거잖아, 우리도 그런 걸 만들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게 전형적인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입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니 배척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이죠. 어디스든 굉장히 흔하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놀랄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견해는 참 슬픈 일입니다. 인터넷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이 기술이 발전했던 건 사람들이 NIH 신드롬을 극복한 덕분이에요. html5나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 등이 사람들이 동의한 표준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거부반응에는 문화적, 심리학적 배경이 깔려 있겠지만 NIH는 참 안타깝습니다. 아주 창조적인 사람들이 그 놀라운 창의력을 기존 성과에 더하는 방향이 아닌 부정적인 방향으로 쓰게 되는 것이잖아요. 중국의 영향은 요즘 정말 강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W3C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W3C에서 웹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가 브라우저 제조업체도 초청했습니다. 10개 기업이 왔어요. 그 중 5개 업체가 중국 회사였습니다. 나머지 5개가 서구 기업이었죠. 중국이 절반인 거에요. 한국과 중국 같은 나라는 문자도 다른 문자를 쓰고,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서 기술도 따로 개발해야 할 부분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커지고 강해질수록 점점 개방적이 되야죠. 경제적으로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중국은 언젠가는 개방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WWW의 발명가'로 불리잖아요. 어떤 느낌이세요?

"많은 사람들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요. 하지만 이 가운데 웹이 아주 성공적이었을 뿐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었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한 일은 작은 일입니다. 코드를 짜서 올려놓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걸 기반으로 브라우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웹은 아주 작아서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썼죠. 그 때 누군가 "세상 모두가 자기 웹사이트를 갖게 되면 정말 쿨할 거야"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소수였죠. 하지만 그 극소수가 좋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NIH 신드롬을 극복했어요. 20년 이상이 흘렀고 그게 오늘날의 웹입니다."

- 그 개방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웹의 특성 때문에 통제되지 않아서 사이버 테러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사고가 계속 생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음, 우선 개인정보 문제부터 보죠. 사생활과 개인정보 얘기에요. 저는 사람들이 사생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달라져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그렇다고 '사생활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건 바보같은 소리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못 사용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의료 기기를 구매한 흔적 때문에 보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건 부당한 겁니다. 보험사가 '아, 이 사람 항암치료를 고민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암보험 가입을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직간접적으로 구하는 게 엄청나게 쉬워졌다는 겁니다. 데이터를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하는 방식을 정책화할 필요가 있어요. 보험회사가 이런 쇼핑기록을 구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걸 가입자 판단에 쓰면 안 된다고 법제화하는 식입니다."

- 전에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소유해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죠.

"그건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회사들이 자신의 정보를 남들에게 파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제 생각에 그건 괜찮습니다다. 그런 기업들이 제 정보를 기억하는 방법을 만들어주면 저는 매우 고맙죠. 제 건강정보, 운동기록, 사회관계 등을 저장해 주면 제가 편하잖아요. 문제는 제가 스스로 이런 정보들을 통합해서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모든 데이터가 서로 다른 웹사이트에 저장돼 있는데 내가 이를 모아서 효과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우리의 개인정보는 우리 스스로에게 제일 중요한 거에요. 이걸 특정 기업이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게 문제죠." 

요즘 웹을 보면 엄청나게 발전해서 스스로 지능을 갖춰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음울한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은 안 하시나요?

"웹페이지가 몇 개나 있는지 아세요? 우리 뇌세포 개수만큼이나 많은 웹사이트가 존재해요. 다만 우리 뇌세포는 늙어갈수록 줄어드는데 웹페이지는 지금도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차이죠. 물론 거대한 인공지능으로서의 웹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과거에는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런 게 다 실현됐잖아요? 기술은 진보를 거듭하고 있고, 인공지능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웹 그 자체는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이죠. 웹은 컴퓨터 간의 연결이 아니라 사람 간의 연결입니다. 웹으로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에요."

한국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혹시 없으신가요?

"이기적으로 얘기할게요. 제가 W3C에서 일하지 않습니까? W3C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세요. W3C가 아니더라도 오픈소스 활동에 참여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고, 능동적으로 소스를 찾아서 수정하세요. 그동안 제가 보기로는 한국인처럼 서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상호작용(interaction)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은 최고에요.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한국인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국적으로 기억하는 편도 아니고, 또 제가 사람 기억을 워낙 잘 못해요. 대신 다른 사람 얘길 한 번 하자면 웹이 제게 준 좋은 만남 중에 에런... 누구라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에 시맨틱웹 그룹에서 만났는데 온라인으로만 보던 사람이라 몇 살인지 전혀 몰랐어요. 열정적인 기여자를 만났죠. 그런데 그 때 이 사람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11살이었나, 12살이었나... 아주 소년이었죠. 웹은 이런 인연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얼마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누구든 기여할 수 있어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소년도 하잖아요."

(그 사람은 에런 스워츠였다. 팀 버너스리가 장례식에 참석했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웹과 앱의 대결 얘기를 합니다. 앱이 승리했다고도 해요. 모바일 세상의 특징이죠. 앱은 웹과 달리 폐쇄적이라고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제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바뀌어야 해요. 바꿀 것이고요. 웹앱을 쓰세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메일을 보내거나 트윗을 하려면결국에는 http 프로토콜을 써야 하고, url을 입력해서 링크를 걸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거에요. 와이어드가 '웹은 죽었다'는 기사를 써서 좋은 문제를 환기시킨 바 있죠. 하지만 요즘 웹앱의 성공사례도 늘고 있어요. 파이낸셜타임즈가 웹앱을 만들어서 얼마나 훌륭한 뉴스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한 번 보세요. 우리가 W3C에서 하는게 이런 새로운 웹 기술 표준을 만드는 겁니다."

악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팀 버너스리가 "잠깐만요, 이번엔 제가 한 번 물어보죠"라면서 질문을 했다. "한국 정부는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나요? 정부 정보공개의 의지는 있나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중요성은 최근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 단계라 공공정보의 활용 사례도 적고 공개된 정보도 거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정부에게 공공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세요. 당신이 기자니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에요. 영국에서 가디언이 하고 있는 게 이런 겁니다. 웹 때문에 전통적인 미디어의 사업이 힘들어진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웹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그는 웹을 처음 만들고 20년 이상을 똑같은 이상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가 더 개방된 세상에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교류를 늘려가며 발전된 기술로 세상을 진보시키는 이상. 즐거운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