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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제품과 위대한 공장, 아이폰4와 갤럭시S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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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갔다 어제 밤에 돌아왔습니다. 구글 컨퍼런스 취재 때문이었는데, 돌아오니세상은 온통 애플과 삼성전자 얘기로 가득하네요. 뉴스를 읽다보니 많은 분들이 소프트웨어의 아이폰이 하드웨어를 보강했고, 하드웨어의 갤럭시가 소프트웨어를 신경썼다는 식의 얘기를 하시더군요. 서로가 서로를 닮아간다고요. 글쎄요. 뭐가 닮았죠?

아이폰4의 하드웨어는 사실 특별할 게 없습니다. 성능이 향상됐다는 A4칩은 이미 아이패드에서 썼던 제품이고, 근본적으로는 ARM의 코어를 사용한 반도체입니다. 세부사항도 무척 중요하긴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스냅드래곤이나 삼성이 갤럭시S에 사용한 1GHz 칩셋과 비교해 숫자놀이에서는 별 차이가 없죠. 게다가 화제를 모은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뛰어난 IPS 방식의 LCD일 뿐입니다. 물론 품질이 다른 저가의 LCD보다 월등하긴 하지만, 야외 시인성이나 넓은 시야각도 등은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LG전자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HD LCD와 해상도 빼고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아마 LG전자가 애플만큼 동일 규격 제품에 대한 주문을 한 번에 많이 할 수 있었다면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LG전자가 처음 내놓은 화면이 됐으리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여기다 '레티나'(망막)라는 이름을 붙이는 마케팅 감각이 있느냐는 건 별개지만요. 어쨌든 중요한 건 하드웨어 사양 하나하나가 아닙니다. 과연 이런 제품을 무엇을 위해 만드는지,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해서 새로운 기능들을 어떻게 다른 기능들과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느냐는지가 중요하죠. 애플은 이걸 정말 잘 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발표에 묻혀 지나갔던 아이폰4의 '카메라'가 이런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4의 새 카메라를 얘기하면서 화소수 경쟁보다는 카메라를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폰카라는 게 기본적으로 늘 들고 다니며 주변을 기록하는 도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필연적으로 폰카는 이미지 센서(필름 역할을 하는)도 작고, 렌즈도 작습니다. 그러면 들어오는 빛의 양도, 빛을 붙잡는 센서의 크기도 작아집니다. 자연스레 사진은 어둡고, 어두운 장소에서 찍은 사진의 화질은 더 형편없죠. 폰카는 이런 기계의 특성상 절대로 DSLR을 능가하진 못합니다. 대신 스티브 잡스는 똑딱이 카메라의 역할 정도는 아이폰4가 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개선했다고 강조합니다. 센서의 화소수는 늘렸는데, 개개의 센서 입자 크기는 줄이지 않아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도록 한 거죠. 그래서 아이폰4의 500만 화소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스냅사진용 컴팩트 디지털카메라와 비교해도 별로 뒤지지 않습니다.

참고삼아 아이폰의 카메라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저는 제 아이폰 3GS의 카메라를 정말 좋아합니다. 화소는 300만 화소밖에 되지 않지만, 굳이 DSLR을 꺼내들 때가 아니라면 다른 모든 사진을 찍을 땐 아이폰 카메라만 씁니다. '셔터랙'(shutter lag)이 거의 없거든요. 셔터랙이란 셔터를 누르고 실제 사진이 찍힐 때까지의 시간인데, 다른 휴대전화 카메라로는 아이가 웃을 때 셔터를 누르면 사진에는 고개를 돌린 모습이 찍힙니다. 0.5초 정도의 순간 차이인데, 아이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 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거든요. DSLR은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 바로 사진이 찍히긴 하지만, 무겁고, 늘 들고다니기 귀찮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아이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에게는 아이폰의 카메라가 굉장히 고마운 기능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화소수는 내세우지만 셔터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죠. 아이폰도 셔터랙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그냥 써보면 압니다. 그래서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숫자놀음보다는 "일단 써보면 다르다는 걸 안다"며 입소문을 내는 것이죠. 애플은 우리가 기계를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회사니까요.

그래서 애플은 위대한 제품을 만듭니다. 화질이 나쁘고, 지글거리며, 음성 품질도 엉망인 기존의 영상통화를 보다가 페이스타임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HD촬영이 가능한 고품질의 캠코더로 촬영해 전송하는 영상통화 화면이란 건 영상통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기능입니다. 페이스타임 광고를 보면, 애플이 어떻게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회사의 미션을 이뤄가는지 잘 느껴지죠.

갤럭시S는 이에 비하면 위대한 제품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온 안드로이드폰 가운데 최고의 기능'이라는 식의 찬사를 받긴 하지만, 사실 최고라기보다는 그냥 '흠 잡을 데 별로 없는 모범생'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갤럭시S를 사고 싶어 밤을 새우는 사람들, 갤럭시S를 손에 쥐고 방방 뛰는 아이들, 갤럭시S를 선물받고 눈물을 쏟는 친구의 얼굴 등을 상상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품이 훌륭하다고 해도 사고 싶을 때 손에 닿는 곳에 있어서 살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갤럭시S의 선주문 물량은 100만 대가 넘는다고 합니다. 110여 개 통신사가 사겠다고 했는데 삼성전자는 이들에게 모두 원하는 날짜에 갤럭시S를 공급하겠다고 합니다. 반면 아이폰4는 미국 등 5개국에서만 6월 말, 이후 7월에는 18개국에서만, 다른 나라에는 더 나중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사고 싶어도 제품이 없어서 못 산다는 거죠. 삼성전자는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 A라인에서 만들던 제품을 순식간에 B라인으로 확장시켜 생산량을 늘리는 마술을 부리지만 애플은 이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애플은 제품 물량을 예약하고, 납기에 따라 제품을 공급받으며, 주문량이 늘어나면 그 때 생산량을 늘립니다. 애플은 늘 시장의 반응에 대한 대응이 늦지만, 제품이 워낙 매력적이라 그걸로 이런 약점을 커버합니다. 심지어 기다리는 고객의 반응을 마케팅에 활용합니다.

반면 스스로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제품 반응이 별로다 싶으면 그냥 해당 라인을 인기 제품으로 바꿔 버립니다. 새 라인에 맞춰 직원을 교육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개월밖에 걸리지 않고, 여러 단계의 등급으로 나뉘어 관리되는 정직원들은 더 높은 등급의 기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근무 환경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바꿔말하면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하는 직원도 없고, 공장 근로자의 근무환경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공장의 생산량을 48시간 이내에 조정합니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짧은 반응속도'를 가진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플은 폭스콘에 48시간 이내에 생산량을 조정하라는 주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주문하면 지금같은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계약도 하지 못하게 되죠. 하지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외에도 기본적으로 많은 휴대전화를 만듭니다. 주문량이 많아서 애플못잖게 낮은 가격에 부품을 살 수 있고, 폭스콘 못잖게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애플과 폭스콘의 조합은 이루기 힘든 엄청나게 빠른 시장 반응속도라는 장점이 있는 거죠. 더 낮은 가격에 얼추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삼성전자의 독특한 경쟁력이 이 회사를 위대하게 만드는 저력입니다. 사실 노키아와 싸우며 터득한 전략이겠죠.

그래서 삼성전자는 위대한 제품은 아니지만 위대한 공장을 만들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소비자들이 '미치도록 갖고 싶은 애니콜'은 그다지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애니콜은 언제나 늘 기본적인 품질은 지켜줬고, 적절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으며, 시장이 원하면 그 순간 그 자리에 제품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아마도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되는 길 대신, 1위가 바뀌어도 계속 2위를 차지하는 기업이 되려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