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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3.0: 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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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은 3월에 다녀왔는데 기사는 5월에 나왔다. 버클리 명예교수이자 구글 수석경제학자인 할 바리언 교수가 썼던 '마이크로 다국적기업'(Micro-Multinationals)이라는 개념에 반해서 기획했던 기사인데, 좀 더 잘 소개됐으면 좋았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아래는 다 못 적은 이야기. 마이크로 다국적기업이란 아주 작은 규모인데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사업을 벌이는 회사를 뜻한다. 지난해 기사로 썼던 '본글로벌'과 비슷한 개념. 어찌보면 이번 기사는 본글로벌 시즌2인 셈인데, 사실 이번에 관심이 생겼던 기업은 이런 작은 기업들이 아니라 마이크로 다국적기업을 존재하게 해주는 회사였다. 그러니까 본글로벌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 기업들인 셈이다. 오데스크는 그런 대표적인 기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데스크를 그저 '온라인 인력중개업체' 정도로 알고 있지만, (혹은 아예 잘 모르고 있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Work 3.0' 기업이라고 표현한다. 선언적으로 말하자면, 오데스크는 현존하는 가장 큰 온라인 노동력 시장이다. 기업은 늘 직원을 구하고, 사람들은 늘 일자리를 구한다. 여기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생겨난다. 대개의 경우 좋은 일자리는 좋은 구직자보다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 번 업계에서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면 실제 능력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 '훌륭한 인재'라는 소문은 '못나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보증이기 때문이다. 한 번 취직 잘 된 사람은 계속해서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경우를 쉽게 보게 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고, 대졸자들이 기를 쓰고 첫 직장 만큼은 대기업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오데스크의 역할은 이런 비대칭성을 줄이는 것이다. 기업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프리랜서를 찾아서 정규직 채용 부담을 줄이고, 프리랜서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기업을 찾아서 일할 수 있는 시간에만 일한다. 이건 이베이와 같은 원리다. 내게 남는 중고품은 내 손에서는 쓸데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를 가진 상품이 된다. 이베이 덕분에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겼고, 유통이 효율화됐다. 그렇다면 일자리라고 그렇게 거래되지 말란 법이 없잖냐는 게 오데스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거래에는 국경이 없다. 이베이가 한국의 영세상인에게 세계로 물건을 팔 기회를 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데스크는 한국 프리랜서들에게도 세계로 노동력을 팔 기회를 준다. 이미 2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오데스크를 통해 외국 기업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오데스크 이용 기업이나 계약된 프리랜서의 수가 아주 적은 편인데도.

오데스크를 알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게리 스와트 CEO가 직접 나와서 회사를 설명해줬다. 그는 오데스크가 애초에는 지금 같은 회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오데스크는 원래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근로자를 위한 업무 관리시스템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였다. 그러니까 원격으로 재택근무자의 업무를 제대로 관리하고 평가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것이다. 이 회사가 창업한 건 2003년. 당시만해도 재택근무나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근무가 미국에서 막 보편화되던 시기였다. 기업들이 다 이런 시스템을 필요로 했으니까 오데스크가 처음 이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기업들이 오데스크의 소프트웨어를 산 뒤 이렇게 원격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들 가운데서 멀리 떨어진 근로자를 고용한 뒤 이 인력을 다른 기업에게 되파는 회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데스크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사업 방향을 바꿔버렸다. 핵심역량이었던 원격근로에 대한 근태관리 소프트웨어는 웹으로 무료 이용하게 해주고, 오데스크가 직접 인력을 소개해주는 사업을 하기로 바꿔버린 것이다. 스와트 CEO는 "오늘의 회사가 있게 한 가장 중요했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건 웹사이트 구축, 특정 제품의 디자인 시안 제작 등 아주 제한적인 업무 몇 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와트 CEO의 설명은 좀 달랐다. 그는 "전자상거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베이는 중고품만 사고 팔았고, 아마존은 종이책만 사고 팔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상품이 등장했고, 이제는 이베이로 자동차나 비행기도 사고 파는 시대다. 아마존은 온갖 물건과 디지털 상품을 사고 팔 뿐 아니라 개인 소매업자들을 위한 판매 플랫폼까지 만들어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의 종류와 형태가 계속 다양해지면서 진화하는 것처럼 온라인으로 거래되는 노동력의 종류 또한 계속 다양하게 진화한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오데스크는 지금 거래되는 업무의 절반 가량이 기술 업무에 해당한다. 프로그래밍 외주란 얘기다. 이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그 자리를 다른 업무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특정 분야의 신규 프로젝트 기획이라거나, 연설문과 홍보문 등 기업을 위한 글쓰기 등이 새로 등장한 대표적 영역이다. 특히 최근에는 오데스크를 통해 진행하는 기업의 단기 프로젝트의 종류가 대폭 늘어나면서 이런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까지 오데스크를 통해 고용하는 기업들이 생겼다. 그런 순간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CEO도 오데스크로 고용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오데스크를 통해 직원을 찾는 기업이 이미 30만 개, 오데스크에서 채용되기 위해 자신의 정보를 등록해두는 프리랜서(오데스크는 contractor라고 부른다)의 수는 160만 명을 넘어섰다.

스와트 CEO는 이를 Work 3.0이라고 표현한다. 일자리 3.0 같기도 하고, 노동 3.0 같기도 한데, 한국어로 옮기면 정부정책이나 북한미사일 이름처럼 들린다. 어쨌든 Work 3.0이란 전통적인 근로형태와의 비교에서 나온 개념이다. 1.0 시절은 지역적으로 일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서 근무하며, 대면관계가 위주였던 전통적인 노동시장을 뜻한다. 모두가 한 사무실에서 일했고, 업무는 잘 구조화돼 있었으며,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하려면 다른 직장이나 장소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2.0 시대가 열렸다. 아웃소싱의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공간에 관계없이 여러 장소에 흩어져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동시에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팀을 이뤄가면서 일해야 한다는 개념도 생겨났다. 능력(talent)을 기반으로 일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3.0은 훨씬 글로벌하고, 훨씬 평평(flat)하며, 훨씬 투명한 노동을 뜻한다.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경제다. 불황이 길고, 골이 깊으며, 위기가 수시로 찾아오는 지금의 경제환경이 기업에게 이런 방식으로 변화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두번째는 인터넷이다. 인터넷 덕분에 이런 형태의 노동이 물리적으로 가능해졌다. 실시간 통신없이는 글로벌하고 평평한 근로라는 게 가능할 수가 없다. 셋째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우리가 워낙 글로벌하게 살게 되면서 아웃소싱 자체의 개념이 기존의 아웃소싱 수준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됐다. 이제 값이 싸서 아웃소싱을 하는 회사는 후진 회사다. 잘 나가는 회사들은 전문가를 사용하고 싶어서 아웃소싱 업체를 쓴다.

그래서 오데스크가 단순 인력만 늘리는 도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들은 할 말이 있었다. 사실은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회사도 있다. 많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동시에 ‘최고의 인재’를 최적의 가격에 찾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많은 미국 기업들은 필리핀이나 인도 사람들을 고객센터나 단순업무에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미국 인력과 일하고 싶어한다. 영어도 되고, 시간대도 같은데다 무엇보다 미국 문화를 이해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문화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구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오데스크를 통해서라면 개인에게 단위 시간 당 더 높은 보상을 해주고도 기업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기사에서도 썼던 조슈아 워렌의 경우다. 텍사스를 떠날 생각이 없고, 큰 회사의 샐러리맨이 될 생각도 없어서 처음에는 제대로 기술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했던 이 젊은이는 오데스크에 등록한 이후로 10개월 만에 시급이 15달러에서 95달러로 뛰었다.

불황에도 강하다. 아무리 불황이래도 회사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을 하려면 더더욱 인재의 수준을 고도화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인력 수준이 높아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인재를 찾는데 회사가 쓸 수 있는 비용은 예전보다 줄어든다.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인재를 찾으려면 방법이 없다. 오데스크 외에는. 그래서 불황 때면 오데스크는 기업 고객이 늘어난다. 그리고 불황이 끝난 뒤 이 기업들은 오데스크 활용을 줄이는 대신 더 늘린다. 스와트 CEO는 "76%의 우리 클라이언트가 오데스크 활용을 '전략적인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단기 인력 채용을 위한 것이었지만 써보면서 장기적으로 채용시스템의 일부를 오데스크를 통해 찾기로 정했다는 얘기다. 한 번 써보니까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의 2008년 금융위기는 오데스크에겐 성장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셈이다.

최근 이 회사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서비스로 발전했다. 기업 고객의 절반은 여전히 미국 기업이지만, 이들이 고용하는 프리랜서는 글로벌하다. 전체 프리랜서의 3분의2가 국적이 미국 바깥이다. 이 덕분에 오데스크를 통해 진행되는 작업의 80%는 늘 국경을 건너 이뤄진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한국으로 진행되는 일 같은 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스페인 기업이 인도 근로자를 고용하는 식이 오데스크의 일반적 고용형태다. 현재 기업 고객이든 프리랜서든 관계없이 오데스크를 이용하는 고객은 세계 150개국에서 오데스크에 접속한다. 아직은 미국과 캐나다, 인도, 러시아, 중국, 방글라데시 등 10여개 국가에 주요 이용자들이 몰려 있지만 앞으로 오데스크의 목표는 이를 넓게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간 거래는 필연적으로 소득을 발생시킨다. 세금 문제는 없었을까. 오데스크도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 최대한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주요 거래국에서는 법률 검토를 거치고, 정부에 소득이 제대로 신고되도록 하기 위해서 급여 입금은 꼭 은행계좌로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례가 나타났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이 나라 정부가 인터넷을 통해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방글라데시는 외화 획득을 위해 국민들에게 나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도록 독려한다. 한국이 40여년 전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보내고 중동 건설현장에 노동력을 수출한 것도 비슷한 일이다. 그러다 오데스크 같은 경우를 발견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오데스크를 통해 자국민이 돈을 버는 건 해외 여행자를 방글라데시로 불러들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나라 정부는 외국인이 방글라데시에서 달러를 쓰는 것과 자국민이 인터넷으로 외국 기업 일자리를 얻은 뒤 달러를 '국내에서' 벌어서 국내에서 그 돈을 쓰게 하는 게 똑같다고 봤다. 이런 근로소득에 과세하는 대신 자국의 유능한 인재를 해외로 빼앗기지 않고 국내에서 일하면서 소비하게 하는 정책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