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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Submarine Web, 해저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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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거미줄을 우리는 월드와이드웹이라고 부릅니다. 그 아래로 조금 덜 촘촘한 거미줄이 있습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바다밑의 거미줄, 해저케이블(submarine cable) 네트워크입니다. 우리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더 많이 쓰고, 유튜브로 보는 영상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인터넷 환경은 해저케이블에 좌우됩니다. 아무리 한국 전체를 초고속인터넷으로 연결한다고 해도 국가간 인터넷 연결은 해저케이블이 99% 이상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KT의 해저케이블 매설 선박이 입항해서 취재하고 왔습니다. 한국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배인데다 기후 사정 등으로 입항 날짜도 불규칙해서 서울에서 세월만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 모레 오라"는 말에 바로 거제도로 달려갔습니다. 덕분에 기사도 잘 나왔고, 해저케이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면에는 사진을 많이 못 실어서 아쉬웠는데, 남은 사진들을 좀 소개할까 합니다. 잘 찍은 사진은 KT에서 제공한 것이고, 못 찍은 사진은 제가 아이폰으로 대충 찍은 사진입니다. 위에 있는 첫 사진은 이번에 입항한 해저케이블 선박 '세계로' 호입니다. 이 사진은 세계로 호의 함교(Bridge), 즉 조타실입니다. 다른 배와 달리 키를 움직이는 전통적인 바퀴 모양의 스티어링휠이 없습니다. 물론 요즘 배들은 예전 범선처럼 키를 돌리기 위한 스티어링휠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상징으로라도 존재하게 마련인데 이 배에는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대신 조이스틱처럼 보이는 저 장비만 있죠. 기본적인 구조의 차이 때문입니다. 해저케이블 매설선은 일반 배와는 달리 제자리에서 전후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풍랑 등으로 항로를 벗어나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파도 때문에 왼쪽으로 평행하게 30m 떠밀렸다면 일반적인 배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길게 원을 그리며 돌아야 합니다. 추진력은 앞과 뒤로만 물을 내뿜는 스크루가 담당하고, 방향은 키가 잡으니까요. 하지만 세계로 호는 스크루가 다섯개입니다. 일반 선박처럼 뒤에 하나가 있고, 나머지 네 개가 마치 자동차의 바퀴처럼 배의 네 모서리에 놓여있습니다. 특히 이 스크루 다섯개는 다른 배의 스크루와는 달리 360도 회전이 가능합니다. 왼쪽으로 평행하게 30m 떠밀렸다면 스크루를 모두 왼쪽으로 향하게 둔 뒤 오른쪽으로 30m만 평행 전진하는 게 가능한 배입니다. 다른 배가 일반적인 제트기라면 세계로 호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헬기와 비슷한 것이죠.

이건 세계로 호의 1/4 크기인 '미래로' 호에 실려있는 해저케이블 매설로봇입니다. 이 로봇이 더 신형이라 조만간 세계로 호로 옮겨 실을 예정인데, 심해를 3m 깊이로 파고 그 안에 케이블을 묻은 뒤 그 위에 흙을 덮는 일을 합니다. 세계로 호는 한국 기술로 만든 선박이지만 아직 이런 로봇은 국내 기업이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기술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채산성 때문이라고 하는데, 기존 고객을 확보해두지 못한 국내 기업이 이런 제한적인 소비자만 존재하는 틈새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초기 투자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네요. 현재 세계에서 세계로 호와 같은 일을 하는 해저케이블 선박은 약 40척 수준이라고 합니다.

세계로 호는 최근 3월 벌어졌던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끊어진 해저케이블을 수리하고 입항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케이블은 당시 끊어졌던 해저케이블의 일부입니다. 이런 케이블을 바다에서 끌어올려 지저분한 절단 부분을 깨끗하게 잘라내고 연결 장비로 새 케이블과 이어붙이는 일을 합니다. 이 작업을 하려면 바다 위에서 완전한 수평을 맞추는 게 필수적입니다. 마치 해저 유전을 개발하는 드릴십처럼 세계로 호도 복잡하게 구성된 밸러스트를 이용해 드릴십 수준의 평형을 유지합니다. 참, 저 케이블 가운데 제 힘으로 조금이라도 구부릴 수 있는 케이블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케이블은 실타래처럼 둘둘 말려 배 안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실을 수 있는 케이블이 무게로 4000톤, 케이블의 굵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해저케이블이라면 4000km 이상 가는 케이블도 한번에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케이블의 두께 가운데 90% 이상이 피복입니다. 가운데에 들어가 수많은 비트를 실어나르는 광케이블 자체는 젓가락 굵기도 되지 않을 만큼 가늡니다. 여러 가닥의 광섬유로 이뤄진 이 광케이블이 실어나르는 데이터는 초당 테라비트 단위로 계산됩니다. 그 덕분에 엄청난 국제 인터넷 트래픽이 이 시간에도 바다밑을 흐르며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죠.

끝으로 낚시바늘처럼 생긴 이 장비는 해저케이블을 끌어올리는 갈고리입니다. 바다에 이 갈고리를 떨어뜨려 끊어진 해저케이블을 건져올리는 것이죠. 어디가 끊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저케이블은 지정된 장소마다 접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각 접점과 접점 사이에서 신호가 중단되는 곳을 파악해 끊어진 장소에 대한 신호를 구하죠. 이렇게 건져올리는 해저케이블은 가끔 거의 다 끌어올렸다가 놓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가라앉는데 걸리는 시간만 하루에서 이틀... 다시 꺼내 올리는데 사흘 넘게 걸립니다. 이 낚시, 좀 대단합니다.

언젠가 한 번 이 일을 하는 분들 얘기를 기사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철도가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국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프라가 바로 해저케이블이니까요. 최근 들어 해저케이블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런던과 뉴욕의 금융회사들은 0.00001초 단위의 시간을 경쟁자들보다 더 벌기 위해 자신들만 쓸 수 있는 해저케이블 전용선을 두 국가 증시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하고 있고, 구글은 세계 통신망의 엄청난 대역폭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기간통신사와 마찬가지로 직접 해저케이블 설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해저케이블은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컨소시엄에 의해 건설되는데, 이 사업에 구글도 뛰어들어 돈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한국에도 KT 같은 회사가 당장의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통신인프라 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