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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대단한 정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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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낯선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 "김상훈씨 되시죠? 13년 전에 출간하셨던 책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평소 온라인에 글 쓰시는 것도 잘 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무장해제되어 고맙다, 누구시냐, 잘 부탁한다, 이런 소리를 할 듯.

그런데 정작 이 낯선 사람이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쓰고 있던 스마트렌즈에 떠오른 정보로 내게 아무 말이나 걸어서 경계심을 해제하고 사기라도 치려고 들었다면? 순식간에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이런 일이 얼마나 쉽게 가능한지 미국 대학생 두 명이 실험을 벌였다. 메타의 레이밴 스마트안경과 PimEyes라는 얼굴 검색 서비스를 결합해 실제 영상을 촬영해 공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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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면, 이들이 지하철역에서 만난 한 남성에게 다가가 "예전에 인도에서 무슬림 등 소수자 관련 업무를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남성은 예전에 인도에서 기자일을 한 적이 있고, 관련 글을 썼기 때문에 자기를 알아보는 이 학생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두 학생이 개발한 뛰어난 기술 같은 건 없다. 이미 시판중인 레이밴 스마트안경에는 카메라가 달려있어서 실시간으로 주변을 인식할 수 있고, 이렇게 촬영되는 사람 얼굴 사진을 PimEyes로 보낸 뒤, 검색결과를 스마트 안경에 띄우면 그만이다. 내게 사진이 있고 컴퓨터가 있다면, 자리에 앉아서는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거리에 서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도로 쓴다는 게 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아넘어간 셈이다.

"그게 뭐 대단한 정보라고"라는 말이 그래서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대다.

정보는 하나하나가 비밀이라 중요하기도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쓸데없어 보이는 정보들을 모아놓을 때 위력이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PimEyes 서비스는 시작 직후부터 온갖 논란을 낳았다. 인터넷을 뒤져 온갖 얼굴 사진 DB를 확보한 뒤 이를 실제 사람 얼굴과 비교해 찾아주는 서비스다보니 당연한 일. 예를 들어 셰어 스칼렛 같은 인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칼렛은 애플의 내부 고발자로서 'AppleToo' 운동을 벌였던 사람으로 유명한데, 불우하게 성장한 탓에 19세에는 잠시 포르노 업계를 기웃거린 일이 있다. 그녀가 PimEyes를 뒤지자 잊고 싶었던 당시 사진들이 검색된 것. 당연히 삭제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프리미엄 요금에 추가 가입하라고 요구했다.

감추고 싶었던 나의 옛 실수들이 실시간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눈앞에 검색되어 나타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애초에 이 학생들이 이 영상을 만든 것도 개인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온라인에서 우리 정보를 관리해야 하는지 경각심을 느껴보자는 취지였다고.

결론: 인터넷에 영상, 사진, 글을 올리는 일은 매우매우 위험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