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표절로 가득한 패션이 성공을 거둔 이유

 

저는 기사를 쓰는 기자이고, 책을 두 권 써서 인세를 받는 저자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식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작권 문제에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죠. 불법 복제는 물론이고, 콘텐츠의 무료 사용,
인터넷에서 일상화 돼 있는 펌질, 타인의 지적재산에 대한 폄하 등에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TED 동영상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동영상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 가운데 하나인 패션 산업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관심이
있는 저작권 문제를 얘기합니다. 전 몰랐습니다. 옷은 너무나 보편적인 제품이라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우치우 프라다가 멋진 재킷을 발견하고는
그 재킷을 그대로 베껴 똑같은 옷을 만들어 판매한 이야기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표절아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패션의
세계에서 이런 모방은 표절이 아니랍니다. 옷을 똑같이 만들지 못하게 법으로 배타적
권리를 줄 경우 옷 자체를 만들지 못할 수 있다는 거죠. 요리법에 ‘영업비밀’은 있어도
‘특허’가 존재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합니다. 대신 ‘브랜드’는 지적재산을
인정받죠. 그게 루이비통이나 샤넬이 자신들의 상표를 큼지막하게 핸드백에
써붙이는 이유입니다. 상표는 베끼면 안되니까요.

 

img1.gif

이 결과는 놀랍습니다. 저작권을 보호받는 영화, 출판 등의 산업규모보다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패션 산업이 훨씬 더 큽니다. 요리법의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식품 산업과 디자인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자동차 산업의 규모는 이보다 더
크죠.

 

그래서 책과 음악, 영화의 저작권을 우리가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조안나 블래클리도 예술작품, 완성된 형태를 가진
개별 제품 등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다만 조금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은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모방과 모방을 통해 일어나는 창조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자신들의 지적재산 대부분을 세계에 공개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구글의 영업비밀’로 알고 있던 검색 알고리듬에 대해서도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해가며
많은 부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경쟁자들은 기꺼이 그 비밀을 흡수해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고, 구글은 이런 경쟁의 상황을 즐깁니다. 경쟁이 혁신을 이끌어내며 그렇게
경쟁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구글은 성장을 멈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소비자입니다.

 

조안나 블래클리의 프레젠테이션은 www.readytoshare.org
사이트에 PDF 문서로 올라와 있습니다. 다른 자료도 많으니 한 번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update>

gatorlog.com 블로그의
아거님께서 트위터로 불고기 타코의 창의성이 가능했던 음식산업의 저작권 문제에
대한 글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괴짜경제학 저자들이 운영하는 프리코노믹스
블로그
인데 위에 제가 썼던 패션산업의 저작권 문제에 관한 글도 있네요. 전통적으로
우리는 저작권이 창의성을 보호하고 증진시킨다고 믿었지만, 레서피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음식 산업에서 불고기 타고 ‘코기(Kogi)’ 같은 창의성이 꽃피는 현상이 놀랍다는
겁니다. 물론 음식은 레이디 가가의 최신 음악 불법복제와는 달리 100% 똑같은 카피가
불가능하고, 종업원의 서빙, 음식을 먹는 장소, 함께 먹는 사람 등의 ‘컨텍스트’에서
소비된다는 차이가 있다고는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방 속에서 혁신적으로 창조하죠.

뒤늦은 TEDxSeoul 후기

사진=문영두 작가님

 

요즘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신봉자입니다. 인터넷이 생활을 편리하게
해줬고, 노동생산성을 높여줬으며,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는 거지요.
조금 더 나가면 인터넷이 직접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고, 인터넷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인터넷이 사람들을 더 착하게 만들 거라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전 이런 얘기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닷컴 버블의 시기에도,
‘웹2.0’ 담론이 화제가 됐던 시기에도 이런 종교적 수사는 여지없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처참하게 끝났습니다.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도시를 운영했던 시대
이래로 (좀 염세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기술의 발전은 권력자의 이익에 잘
어울렸고, 기술을 잘 이해했던 자들 가운데 일부 이런 이익의 인과를 읽어낸 사람들이
새로 권력의 줄에 합류했을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는 있습니다. 이젠 지식을 구하고, 토론을 벌이고,
기술을 이해하는 일이 예전처럼 ‘접근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거죠.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환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환상을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인터넷입니다. 그리고 전 기왕 기술이
새로 등장한 바에야 그걸 사람들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이
긍정적일까요? 인터넷이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TED가 바로 그 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TEDxSeoul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부터, 이 행사의
사전 예약이 시작됐을 때
, 마침내 행사가
진행됐을 때
까지 여러 차례 기사로 소개했습니다. 아마도 처음 이쪽을 취재하기
시작했던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인터넷의 미래가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까요.
이미 뛰어난 지식으로 성공에 이른 사람들이 자신의 남다른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이를 아낌없이 나누고 서로가 함께 발전하는 데 사용하는 문화, 그게 TED와
같은 방식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서는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지금도 제 아이튠즈에는 새로 나오는 TEDtalks 팟캐스트가 꾸준히 쌓입니다.

 

행사 날 느꼈던 감정도 기대를 배신하진 않았습니다. 연사 분들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까지 뛰어난 분들이셨고, 이를 함께 즐겼던 관객 분들의 몰입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조용히 몇 분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강연 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거죠. ‘한옥이 돌아왔다’는
책도 샀습니다. 아마도 다음 ‘사천가’ 공연은 직접 보러가게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제 개인에겐 평년과는 달리 여러 차례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스스로의 미숙함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던 해입니다. 아이도 태어났고, 철 든 다음 처음으로
뉴욕에서 지내며 ‘세계의 수도’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가 제게 저 자신의
지난 삶과 저를 있게 한 수많은 도움들을 돌아보게 했다면, 뉴욕의 경험은 ‘세계의
규모’라는 걸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연말의 TEDxSeoul은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규모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
다리를 딛고 살아가는 거니까요. 그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스스로에 대한 몇 가지
고민들을 약간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귀한 생각을 나누어 제 삶을 변화시켜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p.s. 아 참, 그날의 강연들은 편집 및 자막처리 과정을 거쳐 소개될 예정입니다.
TEDxSeoul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나온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