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마이다스, 마이클 모리츠


1999년,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 세콰이어가 경쟁사인 클라이너퍼킨스와 함께 2500만 달러 투자 계약을 결정하자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라이벌 중의 라이벌이고, 상대 회사에 대해 강한 경쟁 의식을 가진 두 회사의 합작이라뇨. 당시 이 이상한 결정을 내렸던 사람은 마이클 모리츠였습니다. 그가 투자한 1250만 달러는 5년 뒤 160배 불어난 20억 달러가 돼 돌아옵니다. 세콰이어 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마이클 모리츠는 ‘실리콘밸리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각광받게 됩니다. 그 회사의 이름은 구글이었습니다.

마이클 모리츠의 투자 목록은 화려합니다. 구글 외에도 야후, 페이팔, 재포스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들이 줄줄 나옵니다. 갑자기 이 사람 얘기를 꺼내게 된 얘기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가 정해졌다는 기사를 읽다가 마이클 모리츠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마이클 모리츠가 실리콘밸리에서 작은 회사를 창업했다가 이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벤처캐피탈이 된 전형적인 투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그는 학부 시절 옥스포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도였습니다. 그리고는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밟게 되죠. 이후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타임(Time)에 들어가 산업 담당 기자로 일합니다. 1984년에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전기도 쓰게 되는데 ‘작은 왕국: 애플컴퓨터의 사적인 이야기’라는 책이었죠. 잡스는 이 책을 쓰고 있던 마이클 모리츠를 위해 여러 취재협조를 제공했는데, 1983년 모리츠가 타임에 잡스의 딸 리사의 얘기를 쓰면서 관계가 악화됩니다. 잡스가 친딸인 리사를 자신의 딸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얘기를 모리츠가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죠. 결국 애플의 협조는 중단되고 모리츠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해당 책을 완성합니다. 그리고는 1986년 세콰이어로 합류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커리어가 오히려 창업을 해서 부자가 된 뒤 이 경험과 돈을 이용해 벤처캐피탈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벤처캐피탈이라는 역할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벤처 투자라는 건 사실 생각보다 많은 공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돈 대주고 잘 해보라고 박수를 치는 일이 아니죠. 많은 벤처캐피탈이 투자와 함께 회사의 지분과 이사회의 자리를 요구합니다. 주식을 받으면 그만큼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고, 이사회에 한 자리 또는 여러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일상적인 CEO의 경영활동을 감독하고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많은 벤처기업이 투자를 받는 것을 중요한 첫번째 단기 목표로 생각하지만, 사실 일부에서는 이런 투자자의 간섭을 죽도록 싫어하는 기업가들도 있습니다. 직접 투자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제 때 나오는 매출로 계속 재투자를 하는 선순환 구조의 이상을 그리는 거죠. 하지만 요즘같은 시대에선, 특히나 실리콘밸리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모리츠처럼 엔지니어들의 애착과 집중에서 벗어나 산업적 측면에서 비즈니스를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기자 출신이란 배경은 모리츠에게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이 어떤 스토리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보게 하는 능력도 줬을 겁니다. 일종의 보편적인 세일즈 감각 같은 것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마이클 모리츠는 최근에도 주목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페이스북 때문인데요,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시면 마크 저커버그가 잠옷 차림으로 벤처캐피탈의 삐까번쩍한 사무실에 걸어들어가던 장면이 생각나실 겁니다. 세콰이어캐피탈의 투자 미팅에 참석하는 장면이었죠. 저커버그에게 잠옷을 입혀 일부러 무례를 저지르도록 사주한 사람은 냅스터를 만들었던 숀 파커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잘 빠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파커의 역할을 맡았죠. 어쨌든 파커가 세콰이어를 싫어하게 된 건 (구체적인 사실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마이클 모리츠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커가 플락소라는 회사에 참여해 한참 서비스를 성공시키려고 할 때 모리츠가 투자를 결정했고, 이후 모리츠가 이끄는 세콰이어의 팀은 골칫거리였던 숀 파커를 회사에서 몰아냈다는 얘기입니다. 파커는 영화는 물론 영화의 원작이 된 ‘액시덴털 빌리어네어’에서도 강하게 벤처캐피탈을 비난합니다. 이상도 없고 사업 성공만을 위해 혈안이 된 더러운 협잡꾼들처럼 평가하죠. 파커가 믿었던 유일한 벤처캐피탈은 결제대행업체 페이팔과 헷지펀드 클라리움캐피탈의 창업자인 피터 티엘인데,(그래서 티엘은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가 됩니다.) 사실 페이팔의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는 세콰이어의 투자였습니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요.

좋은 벤처 투자자란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게 재무적 투자를 해주고, 초기 단계의 기업이 놓치기 쉬운 경영상의 조언을 해주며, 이미 업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자신의 투자 사실을 통해 기업에 신뢰도를 부여해주고, 필요하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제품을 판매할 고객까지 소개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벤처투자자가 자선사업하듯 해주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말을 듣지 않는 창업자를 쫓아내기도 하죠.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존 스컬리 당시 애플 CEO의 ‘반란’ 때문이라고 쉽게 얘기되지만, 사실은 잡스의 편이었던 초기 투자자인 마이크 마쿨라조차 잡스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반대해 스컬리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이사회의 한표와 의사결정권이 있는 지분은 그래서 창업자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죠. 파커가 극도로 싫어했던 마이클 모리츠가 훌륭한 벤처투자자로 인정받는 것도 그런 ‘어른의 냉정함’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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