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을 만든 역사적인 기술

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처음 개봉했을 땐 컴퓨터 그래픽이라곤 없었습니다. 특수효과를 위해선 모든 걸 실제로 만들어 촬영하거나, 아니면 필름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넣어야 했죠. 그래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로봇 C-3PO나 R2-D2 등은 모두 사람이 직접 속에 들어가 연기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로봇의 모습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요. 그런데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2015년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는 이런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 새로 등장하는 로봇 BB-8은 더 이상 사람이 속에 들어가 연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제 기계가 연기를 하고, 부자연스러운 장면에는 컴퓨터 그래픽이 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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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굳이 저 속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BB-8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로봇은 360도 굴러가는 공 모양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는 그 위에 얹혀 있죠. 눈사람처럼 공 위에 또 공을 올려놓고 아래 공을 굴려 움직이는데도 신기하게 위에 얹힌 머리는 떨어지질 않습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게 아닙니다. 스피로라는 스타트업은 BB-8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판매중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이 장난감 BB-8도 공 위에 머리가 얹힌 상태입니다. 바로 중력센서라고 흔히 불리는 가속센서(accelerometer)와 자이로센서(gyroscope) 덕분입니다. 이 센서들이 BB-8의 몸체가 어디로 움직여도 공모양의 몸 속에 있는 모터 및 작동부를 바닥에 자리잡게 도와주고, 반대로 머리는 공모양 몸체 윗부분에 붙어있게 해주는 것이죠.

중력센서와 자동차

이 가속센서는 의외로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당장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에어백이 이 가속센서를 활용한 제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범퍼에 직접 충격이 왔을 때 에어백이 터지는 등 구식 방식의 센서를 활용했지만, 1990년대 이후 가속센서가 쓰이면서 그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오늘날의 차량에 쓰인 가속센서는 차체에 비정상적인 급한 감속이 생기는 순간을 순간적으로 감지해, 충돌과 함께 에어백을 자동으로 터뜨려 운전자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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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하드디스크에는 에어백이 있습니다

컴퓨터 회사들도 이 자동차 에어백의 원리에 무릎을 쳤습니다. 요즘은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라는 곳에 정보를 저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컴퓨터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자기(磁氣) 원반 위를 헤드라고 불리는 장치가 살짝 뜬 상태로 빠르게 읽어들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닐 땐 차가 덜컹거린다거나 노트북을 떨어뜨리는 순간 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때 헤드가 자기 원반을 툭 건드리면서 생기는 흠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작은 흠집이라도 워낙 민감한 정보를 많이 저장하는 HDD의 특성상 치명적인 정보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제조사들은 가속센서를 노트북에 부착합니다. 하드디스크의 헤드가 원반을 건드릴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할 땐 헤드를 원반에 닫기 전 강제로 떼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컴퓨터용 에어백’이라 할 만한 발명이었습니다.

최근의 자동차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차체자세제어장치(ESP)도 가속센서의 덕을 보는 기계입니다. 운전자가 차의 스티어링휠을 급격하게 좌우로 꺾으면 차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빙그르 미끄러져 돌게 마련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요즘 자동차는 수십분의일초 간격으로 차의 움직임을 측정합니다. 바퀴가 도는 속도와 실제 차량이 움직이는 속도 등을 비교해 바퀴가 미끄러지고 있는지를 살피고,(가속센서) 차체가 실제로 미끄러진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회전하는지 파악해(자이로센서) 특정 바퀴의 브레이크를 잠그거나 풀면서 방향을 바로잡습니다. ESP가 적용된 차의 경우 사고율이 30% 이상 감소하는데다 안전한 차선 회피율은 두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네 바퀴 중 한 바퀴의 브레이크만을 수십분의일초로 계산해 잠궜다 풀어주는 일은 어떤 프로 레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중력을 이해하다

가속센서는 중력 자체를 측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강 고수부지 등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무인조종 비행기 드론이 이런 기술을 사용합니다. 네 개의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형태가 대부분인 드론은 몸체의 수평을 자동으로 유지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가속센서가 각각의 프로펠러 부분의 수평을 맞춰주기 때문입니다. 참, 가속센서란 속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어떻게 수평을 맞추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게 바로 ‘중력 가속도’를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가속센서는 바닥에 놓여서 움직이지 않을 때 센서 자체가 수직방향 위쪽으로 중력 만큼의 가속을 하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동안이야말로 가속도가 0인 상황이라 보는 것이죠. 자이로센서는 반대로 드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회전각에 따른 운동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중력센서의 특성을 이용하면 각 지역 별 높이와 지각의 밀도 등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위치별 중력 가속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미사일, 특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입니다. 실제로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국의 각종 방해전파 등이 방해해도 한 번 발사한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가속센서를 활용한 유도장치를 개발해 왔습니다. 이들은 세계 전역의 스파이들과 바다 곳곳을 누비는 핵잠수함 등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실제 중력량을 측정한 ‘중력지도’를 만든 뒤 이를 ICBM에 적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제 아무리 바람이 불고 기후가 변하고 방해전파가 작동해도 장거리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발사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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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지도는 있어야 ICBM을 쏘는 겁니다.

하지만 중력을 측정한다는 건 무시무시한 미사일 발사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요즘 많이 찍는 디지털 사진입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 디지털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 카메라들은 카메라를 세워서(수직방향) 찍을 때나 눕혀서(수평방향) 찍을 때를 알아서 구분한 뒤 우리가 촬영한 사진을 세우거나 눕혀 줍니다.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가속센서 덕분입니다. 또한 이 기술은 향후 ‘손떨림 방지’ 기능으로도 이어지죠. 미세한 진동을 가속센서가 빠르게 파악해 움직임의 반대 방향으로 렌즈를 세밀하게 움직이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중력센서 시장의 폭발

사실 최근 10년 동안 이같은 가속센서의 활용은 말 그대로 ‘폭발’했습니다. 닌텐도가 약 10년 전 쯤 개발한 ‘위(Wii)’라는 게임기가 시장을 열었다고 봐야합니다. 위 게임기는 막대 형태의 게임 조종기로 게임을 조작하는데, 이 조종기 속에 바로 가속 센서가 사용됩니다. 고급 모델인 ‘위 플러스’에서는 자이로스코프도 함께 사용돼 각도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측정하기 시작합니다. 즉 게임 컨트롤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뿐만 아니라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 그쪽으로 얼마 만큼의 각도를 얼마나 빠르게 회전했는지까지 알려주는 셈이죠.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가 함께 쓰인 위 컨트롤러는 해당 컨트롤러를 든 사람의 움직임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어 게임 조작에 최고입니다. 예를 들어 위 컨트롤러를 들고 주먹을 휘어서 내뻗으면 게임 속 내 캐릭터가 악당에게 멋진 라이트훅 펀치를 날리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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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고글보다는 손에 막대가 좀 낫네요

이 기능은 최근 인기를 끄는 ‘오큘러스VR’, ‘기어VR’ 같은 가상현실 체험기에도 사용됩니다. 10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값도 싸진 중력 센서는 이제 눈 앞까지 덮는 헬멧 형태의 기계를 착용한 채 고개만 움직이면 시선에 따라 영상이 함께 움직이는 세상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중력센서는 우리 눈 앞에 현실감 넘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실제로 구현해 주는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중력센서를 사용한 재미있는 기술에 VR 업체들보다 앞서서 주목했던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애플이었죠.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가속센서를 사용합니다. 그 덕분에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버튼 하나 없는 아이폰에서도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기를 흔들거나 움직이면 게임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니까요. 물론 위 컨트롤러나 아이폰을 잘못 흔들다가 기계를 떨어뜨리거나 잘못 날려버려서 집안의 기물을 망가뜨리는 일이 생기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아이폰, 그리고 아이폰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스마트폰의 가속센서 채용은 이 작은 센서 시장의 엄청난 성장을 불러옵니다. 2011년에는 애플이 세계 메이저 중력 센서 업체의 부품 절반 이상을 사들일 정도였는데 곧이어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역시 애플’이라며 감탄만 하기엔 이릅니다. 삼성전자 또한 스마트폰을 팔기 전 이 가속센서를 사용한 휴대전화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2005년 출시된 이른바 ‘비트박스폰’인데,(아이폰보다 2년이 빨랐습니다) 가속센서를 사용해 흔들면 주사위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허공에서 숫자를 그리면 단축번호가 인식되면서 전화가 걸리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고다니다 괜히 전화가 걸리는 등의 오류로 비판을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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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애니콜 비트박스폰!

최근에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에도 이런 중력센서가 사용됩니다. 중국의 샤오미가 만들어 최근 인기를 끄는 ‘나인봇’이라는 1인용 탈것은 단 두개의 바퀴위에 사람이 올라서면 자동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바퀴가 자전거처럼 앞뒤로 있는 게 아니라, 좁은 판자에 올라서면 양 발 옆으로 가로로 놓인 것이라서 앞뒤로 넘어질까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센서가 흔들림을 정확히 제어하면서 처음 올라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세그웨이라는 미국 회사가 약 십년 전 대당 천만원 정도 하는 기계를 이 기술로 만들었는데, 샤오미가 세그웨이를 인수한 뒤 대당 30만 원 수준의 기계로 값을 낮춰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일을 하는 중력센서를 보편화한 건 결국은 반도체 기술이었습니다. 초소형 공정을 가능하게 만든 반도체 기술 혁신이 단순히 전자회로만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감지하는 소형 기계 센서까지 탄생시킨 겁니다. 최근 우리 주위는 가속센서와 자이로센서 같은 중력 센서들로 도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물론, 자동차와 각종 스마트워치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까지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중력센서야말로 진정한 사물 인터넷 시대를 우리 생활로 앞당겨 불러들인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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