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페이스북이 지루함과 싸우는 법

카카오에는 호칭이 단 두 개 뿐이다. 대표와 팀장. 회사를 대표해야 하는 두 명의 공동대표가 대표라는 직함으로 불리고, 각 팀을 이끄는 팀장이 또 팀장이라는 직함을 갖는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 가보면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전혀 없다. 그냥 모두 JB(이제범 대표)고, 스캇(이상혁 CDO)이다. 카카오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한국어 이름으로 “OOO를 알아요”라고 얘기하면 자기들끼리 퍼즐이라도 푸는 듯 고민하다가 “아, 에밀리(가칭)요?” 식으로 대답하기 일쑤다.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여러번 겪다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오늘(11월5일자) 신문에 실린 이상혁 카카오 최고개발책임자(CDO)의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다. 카카오는 계속 새 서비스를 내놓아야 하는 ‘혁신 주도형 조직’이다. 혁신이 멈추면 회사도 멈춘다. 그게 대박이 난 카카오스토리나 카카오게임이 됐든, 결국 아무도 안 쓰고 자기들만 쓰는 회사 그룹웨어처럼 변해버린 카카오아지트가 됐든 간에 이 회사는 무엇이든 만들어내야 했다. 모바일 시장이란 게 멈춰 있으면 망하는 극도의 경쟁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회사는 끊임없이 좋은 아이디어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고도로 요구한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든 내라는 식이다. 쉽게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카카오아지트에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잡글을 쓰듯 아이디어도 올리도록 권고한다.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주로 댓글)이 좋으면 이걸로 팀을 꾸린다. 대기업이라면 어이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움직인 덕분에 대기업에선 몇 달 걸릴 TFT 구성이 카카오에선 정규 팀 신설까지 며칠만에 일사천리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누군가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표 아래 유일한 직함인 ‘팀장’도 생겨났다. 하지만 팀이 워낙 빨리 생기고, 없어지고, 바뀌고, 옮겨가기 때문에 팀장을 모두 기억하긴 힘들다. 어제의 팀장은 오늘의 팀원이고, 오늘의 팀원이 내일의 팀장이니 결국 어쩔 수 없이 변하지 않는 ID같은 호칭이 필요했다. 그게 영어이름이었다. ID를 부를 땐 직함이 필요없잖은가.

여기까진 신문에도 (요점만 간추려) 썼던 얘기인데, 이런 얘기를 적고 있자니 한가지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바로 지루함.

카카오는 물론이고 요즘 잘 나가는 첨단 기술 기업들은 모두 직원들의 지루함과 싸운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기업들도 직원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해커톤’을 통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찾는다. 팀은 최소화한다. 10명 이상의 팀 같은 건 죄악으로 여겨진다. 팀원은 늘 손가락으로 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작은 팀이어야 자기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켰다”는 이유로 큰 팀에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속에 일하는 건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천재라고 믿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포로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된 느낌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해서 돌아갈까? 돌아간다. 회사가 하고 싶은 일만 잘 정하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카카오 같은 회사들은 ‘회사가 하고 싶은 일’을 신제품 개발로 정했다. 당연히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우선에 놓이고, 그들이 회사 직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이 바로 엔지니어다. 얼마전 구글을 나와 타파스미디어라는 회사를 창업한 김창원 대표는 구글이 자랑하는 20%의 자유시간으로 새 일을 해보지 그랬느냐는 질문에 “그건 엔지니어에게 허락된 시간이고, 엔지니어가 아닌 나머지 스탭 부서 직원들은 120%의 시간을 회사 일에 바쳐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물론 구글을 비난한 건 아니고, 회사 문화가 엔지니어 위주임을 강조하기 위한 얘기였다. 카카오 이수진 홍보팀장도 “회사의 모든 자원이 개발자 우선으로 쓰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직군은 이들을 잘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가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라면, 개발자에게 천국을 만들어주는 게 정답이고 그렇게 하면 이런 핵심인력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해도 회사는 돌아간다.

지루한 단순 반복 업무가 이들에게도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페이스북에선 “자동화될 수 없는 단순반복작업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1.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2. 스스로 하기 싫은 일은 기계가 하도록 만들기.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을 자동화시킬 수 있을만큼 똑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그냥 좋은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식으로도 살아남을 수 없다. 객관적으로 지루한 일은 주관을 바꿔 순응할 게 아니라 객관적 기술로 해결해야만 한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은 끝내주게 할 수 있다. 출장을 가야 풀릴 일이라고 생각되면 바로 출장 결제가 떨어진다. 실제로 인터뷰 직전 카카오 이상혁 CDO는 태국 메신저 시장을 봐야겠다며 태국 출장을 다녀왔다. 함께 일할 좋은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해외로 날아간다. 예를 들어 구글은 능력있는 직원을 뽑으려면 아프리카 사막이나 남극 코앞인 칠레 남단까지라도 찾아가는 걸로 유명하다. 하고 있는 일 말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다면 한두달 지금 팀을 떠나 남의 팀에 가서 일하고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전에 소개했던 페이스북의 ‘해커먼스'(Hackamonth)가 바로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1달 정도만 하고 돌아오는 제도다. 그러니까 지루할 일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 회사는 모든 걸 다 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축복받은 듯한 이 사람들은 오늘도 그 훌륭한 회사를 때려 치우고 새로운 작은 회사를 만들거나 찾아간다. 역시 미친 짓 같지만 이 업종에선 그게 일상이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훌륭한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왜 요즘은 IT 업종이 세상에서 제일 경쟁력 있는 산업처럼 보이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답은 널려 있다. 그것도 오픈소스로. 노하우를 가져다가 사용한다고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다만 그런 보석 같은 노하우가 거리에 흩어져있다보니 사람들이 보석을 돌인 줄 착각하고 주워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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